허물어진 것을

허물지 않는다는 것

그 위에 내려앉는 푸른 하늘에게

곁눈을 파는 사이

가이드가 굶주린 사자를 모사하고

선글라스와 모자들

세계 도처에서 온 연인들을 구경하면서

나 여기 왔노라, 증명사진은

생략하고 지나가려는데

딸아이가 다짜고짜 아내 곁에 세운다

땀투성이 검투사를 먼발치에 두고

오랜만에 단둘이 포즈

아빠의 말년을 위한 사진이야

엄마가 나중에 헤어지자고 하면

오늘 사진 꺼내 들고 말해

이거 보시오, 이렇게 다정했던

사라진 순간을 기억하시오

자아, 영원한 것은 없다, 치즈

훗날을 대비하는 신 김치 미소

위대한 폐허 앞에서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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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콜로세움/양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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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시다. 그런 한편으로 괜스레 짠한 시다. 시쳇말로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다. 여행은 잠시간의 이탈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은 따라서 일상 저 바깥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애써 잡아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애석하지만 사진은 오히려 "영원한 것은 없다"를 증명한다. 우리의 나날들은 차라리 "콜로세움"처럼 부서질 대로 부서진 "폐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물어진 것을" 허물어진 그대로 "허물지 않"을 때 그 "폐허"는 "위대"해진다. 그게 삶이기 때문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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