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IP)이 미래다]②경영전략으로 활용되는 특허 분쟁
퀄컴, 매년 특허로만 3조원 수익
애플, 삼성 비롯 소송규모 10조원 이상
경쟁사 견제효과·진입장벽도 높여
국내기업들 전문인력 대응 역부족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지식재산(IP) 선진국인 미국 기업들이 IP를 기업경영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특허권, 상표권만으로 수조원의 수입을 내는 기업이 있을 정도다.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IT기업 퀄컴은 총 매출의 3분의 1에 달하는 3조원 이상을 특허로 벌어들인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선두를 뺏긴 것처럼 보였던 필립스도 매년 6000억원 이상을 특허 로열티 수익으로 벌어들이고 있다. 이른바 '특허괴물'이라고 불리는 독립 특허관리전문회사(NPE)의 전유물로만 보였던 IP분야가 점차 글로벌 기업들의 주요 경영전략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회사는 '스마트폰' 붐을 이끈 애플. 이 회사는 최근 2년 동안 한국의 삼성전자를 비롯해 핀란드 노키아, 대만 HTC 등 주요 글로벌 휴대폰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IP소송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이미 합의종결됐거나 진행되고 있는 크고 작은 특허분쟁 규모가 최대 십수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애플의 IP경영전략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애플은 최근 림(RIM),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6000여개의 캐나다 통신회사 노텔의 특허를 사들였다. 당초 경매에 참여한 구글과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구글이 제시한 금액보다 5배나 많은 45억달러를 인수금액으로 제시해 관련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에 따라 애플은 통신관련 기술 후발주자에서 가장 위협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IP업계 전문가들은 애플의 공격적인 특허매입으로 스마트폰 관련뿐 아니라 통신기술 관련해서도 주도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것으로 내다봤다. 주한중 발명진흥회 전문위원(변리사)은 “IP를 통한 애플의 공격성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아이폰 성공에 이어 통신기술특허까지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어 스마트폰과 관련한 IP분쟁이 앞으로 어떤 양상을 띄게 될지 두려울 따름”이라며 “앞으로 스마트폰 관련기업은 물론 통신시스템 기업들도 특허 전쟁에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애플의 IP경영전략은 대부분 소송의 승패에 있지 않다. 경쟁사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진입장벽을 높이는 데 있다. 통상적으로 소송이 제기되면 피소된 회사는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데 큰 부담을 안게 돼 추가적인 기술개발은 물론 마케팅 전략조차 세우기가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소송은 대부분 합의로 마무리되지만 확실한 원천특허를 보유하지 않는 한 벌어들인 이익 이상을 고스란히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도 심리적으로 부담이다.
지난해 애플로부터 수차례 IP소송을 당한 삼성전자가 그때마다 맞고소로 대응했던 것은 이러한 심리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무(無)대응은 곧 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고 어렵게 진출한 해외시장 점유율 확대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갤럭시에 대한 특허침해 소송을 한국과 일본, 독일 등지에서 제기했고 특히 미국 소송에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5~10년 후를 위해 소프트 기술, S급(특급) 인재, 특허 등 세 가지를 당장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던 부분도 애플의 잇단 IP소송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애플, 혼다 등 해외 기업들이 제기한 IP소송에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기업 내 IP조직과 인력풀은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삼성그룹이 IP관련 센터를 운용해 360여명의 변호사, 변리사 등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LG그룹도 200여명의 전문인력이 활동 중이지만 IBM, 애플, 혼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 완성차 기업 빅5에 진입한 현대차와 기아차의 경우 IP전문인력이 80여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은 IP센터를 정의선 부회장 주도하에 지난해 '실(室)'로 승격시킨 이후 인원을 2~3배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미국, 일본, EU기업들의 IP소송을 제기할 가능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며 “그동안 IT분야에 국한됐던 분쟁이 자동차 등으로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글로벌 기업들도 IP경영전략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 자체적으로 전문인력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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