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마약이 우리 사회를 덮쳤다

동남아 수천원 하는 마약, 한국 오면 수십만원
경제력 상승, IT 인프라 탄탄…최종 소비처 전락
국가 신인도 역이용…'유통 허브' 부상 우려도

대한민국이 글로벌 마약 카르텔의 고수익을 보장하는 '프리미엄 시장'으로 부상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동남아시아에서 헐값에 유입된 마약이 한국에 들어오면 수십 배 폭리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높은 국가신인도를 악용해 항만 등을 마약 유통의 중간 기점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마약 범죄를 줄이기 위해 국제 공조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마약 유통업자와 수사 당국을 취재한 결과, 실제 마약류 유통 현장에서 체감하는 가격 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동남아 현지에서 1g당 수천~수만원대에 생산되는 마약이 국경을 넘는 순간 수십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필로폰은 1g당 50만원, 코카인은 40만원을 넘나든다. 극소량으로도 강력한 환각 효과를 내는 위험 약물 LSD는 1장(1탭)이라 부르는 1회 투약분(100㎍·1㎍=100만분의 1g)에 10만원이다. 1g 단위로 환산하면 10억원에 달한다.

'마약청정' 대한민국, 어쩌다 타깃이 됐나

챗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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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 분석에서도 한국은 수익성이 가장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UNODC가 각국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마약류 도·소매 가격을 집계한 결과, 동남아 국가 필로폰 소매가는 1g당 10달러(약 1만4000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마약 유통이 활발한 미국·유럽 등 서구권에선 40달러(약 6만원)에 거래된다. 한국은 그 10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한국에서 유독 마약 가격이 폭등하는 이유로는 '순도'와 '할증'이 거론된다. 전직 마약 유통업자는 "한국으로 들어오는 마약은 골든 트라이앵글(태국·미얀마·라오스 국경 지대) 생산지에서 나온 고순도 제품이 많다"며 "한국은 섬이나 다름없는 지리적 특성상 항공·해상 통관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적발 리스크에 따라 운반책 몫의 수수료가 더 붙는다"고 귀띔했다.

한국은 마약류 범죄에 엄벌주의 기조를 유지해온 만큼 밀수 적발에 대한 위험 부담이 크다. 세관 등에서 단속이 강화되면서 국제우편(EMS), 지게꾼(운반책) 등을 통한 밀수 수법들이 적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마약 유통업자 사이에선 이를 '세금'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정도의 위험 부담과 비용을 감수해도 일단 국내로 들여오기만 하면 수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부유해진 점도 하나의 요인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글로벌 마약 시장에서 한국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국민 소득의 증가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며 "우선 마약을 구매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 능력을 갖춘 수요자가 많아졌고, 단속에 대한 위험수당이 붙으니 범죄조직 입장에선 프리미엄 시장으로 공략할 동기가 된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편리한 IT 기반은 범죄조직에도 새로운 범죄 수단을 제공한다.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텔레그램·다크웹·가상자산 등 비대면 유통을 중심으로 마약류 범죄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과 가상자산 거래가 활발하다는 것은 범죄조직 입장에선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릴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의미다.


수사 당국, '주요 유통허브' 부상 가능성 주시

부산항에 정박 중인 컨테이너선에 화물이 쌓여 있다. 강진형 기자

부산항에 정박 중인 컨테이너선에 화물이 쌓여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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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당국은 한국이 '주요 허브'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다. 한국이 마약류 범죄에 민감한 나라인 만큼 그 국가신인도를 제3국으로의 유통하는 데 이용하겠다는 발상이다. 한국을 거쳐온 항공기·선박 등에 대한 검문이 상대적으로 완화돼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항만의 경우 환적 시스템의 허점을 노린다. 세계적인 물류 허브로 꼽히는 부산항 등이 주요 타깃이다. 민간 보안 전문가는 "마약 생산국에서 목적지로 가면 '레드 플래그(경고)'가 뜬다"며 "한국을 거쳐 가면 화물 원산지가 안전국으로 세탁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과 UNODC 자문위원을 지낸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는 "한국을 마약류 유통의 경유지로 활용하는 경향이 실제로 있다"며 "다른 나라에서 '한국은 단속을 제대로 할 테니 거기서 온 물건은 괜찮겠지' 하는 심리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텔레그램 전세계'로 불린 유통책 박왕열(47)을 수사했던 김대규 영산대 경찰행정학과 특임교수(전 경남경찰청 마약수사계장)도 "중남미 지역에서 들어오는 화물의 70~80%는 부산항을 거쳐 간다"며 "범죄 조직들이 한국을 거쳐 온 선박들은 안전하다는 인식을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지난달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국가중앙사무국 회의에서 이런 우려를 들어 '인터폴 마약대응센터' 국내 유치를 강력히 피력했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류 범죄 수사에 요구되는 국제 공조의 중추를 국내에 유치해 마약류 범죄 대응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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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장희준 오지은 박호수 이지예 박재현 기자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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