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웨스틴조선호텔서울에서 열린 원자력계 신년 인사회에는 300여명의 인사가 몰렸다. 주최 측인 한국원자력산업협회는 역대 가장 큰 규모라고 전했다. 호텔 로비에는 이른 아침부터 경주, 창원,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원자력 업계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인사를 나눴다. 지난해 팀코리아가 24조원 규모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우선협상 대상사 선정, 1조2000억원 규모 루마니아 원전 리모델링 사업 수주 등 성과를 거둔 만큼 신년 인사회는 겉으로는 활기가 넘쳐 보였다.
하지만 이날 만난 원자력계 인사들은 마음 한켠에 쌓여있던 근심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원전 생태계가 완전히 정상화되기도 전에 과거의 탈원전으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한 원전 기자재 업체 임원은 "지난 문재인 정부 때 탈원전 정책으로 일감이 없어 암흑기와 같은 나날을 보냈다"며 "이제야 숨통이 트이나 싶은데 정권이 바뀌면 다시 탈원전 정책으로 회귀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걱정이 아예 근거 없지도 않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국회 보고를 받지 않고 있다. 전기본은 국회 상임위 보고 이후 전력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야당이 보고받기를 거부하면서 보고가 사실상 심의 절차로 변질돼 버렸다. 민주당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고 원전을 줄일 것을 요구해왔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2038년까지 대형원전 건설 계획을 3기에서 2기로 축소하고 태양광 발전 설비 용량을 2.4기가와트(GW)를 늘리는 ‘조정안’을 만들어 야당을 설득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4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 정책조정위 회의를 열었으나 보고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그들의 지지 기반인 진보 환경 단체들의 압박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반핵을 외치는 일부 환경 단체들의 주장과 달리 국제 사회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모두 필요하다는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은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안전성 및 핵폐기물 처리 시설 등의 이유로 원전 추가 건설에 반대하고 있는 환경론자들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원전은 안전하다"며 "원전을 배제할 여유가 없다"고 정색하며 말했다. 기후 위기 앞에서 원전이나 재생에너지냐를 따질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2024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6도를 넘어섰다.
이미 세계 각국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에너지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원전을 주목하고 있다. 전력 생산에서 원전 비중이 약 70%를 차지하는 프랑스는 지난해 사상 최대치인 89테라와트시(TWh)에 달하는 전력을 수출했다. 탈원전을 추진했던 독일은 지난해 전력의 54%를 재생에너지로부터 충당했다. 하지만 겨울 들어 일조량이 부족해지자 지난해 12월에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18%까지 떨어졌다. 독일은 결국 석탄과 가스 발전에 의존해야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프랑스로부터 전력을 수입했다.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가 부족할 때 이웃 국가로부터 전력을 수입할 수도 없는 고립된 국가다. 그만큼 기저 전력으로서의 원자력의 역할이 중요하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적이었던 조바이든 행정부조차도 지난해 11월 원전 발전량을 2050년까지 3배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원자력계 신년 인사회에서 야당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했던 허성무 민주당 의원은 원전에 대한 민주당의 대외 메시지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올해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전 예산을 삭감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과거 탈원전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었기를 바라본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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