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이 가장 큰 리스크
환율공포 기업·국민이 감당
재계가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심경에는 초조함이 묻어나 있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후폭풍까지 겹치면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한 대기업 임원의 심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불확실성은 기업들엔 가장 큰 리스크"라고 우려했다.
계엄 사태는 단 몇 시간 만에 종료됐지만 그 여파는 길게 이어지고 있다. 환율 문제는 원료를 수입해야 하는 배터리, 정유, 석유화학 기업들을 더욱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계엄 당시 1440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1420원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9일에는 1430원을 뚫을 기세로 오르고 있다. 이 역시 불확실성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윤 대통령 탄핵안이 지난 7일 국회에서 폐기되면서 향후 정국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어지자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환율이 오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대기업들은 막대한 환차손 부담을 떠안게 됐다. 배터리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은 3분기 기준 약 6조8300억원의 달러 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달러 자산 4조4400억원을 웃돈다. 환율이 오를 때마다 갚아야 할 부채 규모가 커진다는 의미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대응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던 기업들은 환율 리스크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전반적인 산업 상황도 녹록지 않다.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이 악화되자 사업 구조를 줄이고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업계는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대비해 투자 계획을 보류하며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다. 산업계는 자구책을 마련하며 위기를 버티고 있지만 기업들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심을 잡아야 할 경제 컨트롤타워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현 정부 경제팀은 흔들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당장 내년도 예산마저 어떻게 결정될지 모르는 형국이다. 야당은 추가 삭감을 예고하고 있다.
모든 국무위원은 앞서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후속 인사는 불투명하다. 주요 경제 정책은 연기되거나 표류하고 있다. 이달 초 발표 예정이던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방안도 무기한 연기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주요 부처 시계는 사실상 멈춘 상태다. 윤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에 모든 국정 운영을 위임하고 2선 후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장 나타나고 있는 극심한 국가 경제 혼란 상황을 누가 총대를 메고 수습할지도 알 수 없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오롯이 감당하고 있는 주체는 기업과 시민들이다. 정부까지 가세한 전 세계 경제 총력전에서 한국만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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