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경제읽기]석유 결제 위안화 검토…달러 위상 흔들리나
석유 결제 통화가 기축통화 가르는 잣대
무역수지 적자 내더라도
견딜 경제력도 있어야
中 금융자산 美의 20%
당장 달러 대체할 통화는 없어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이 수입하는 석유를 위안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달러 위상 변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과거처럼 특정 통화를 금으로 바꿔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석유를 어떤 통화로 결제하느냐가 기축통화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인 만큼 위안화 결제 비중이 높아질 경우 달러는 반대로 위상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전세계 석유 거래는 80%가 달러로 결제되고 있다.
어떤 통화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해당 국가가 경제, 정치는 물론 군사 부문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거래 대상 국가가 늘고, 대외 결제에 해당국 통화를 많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도 풍부해야 한다. 전세계 사람들이 해당 통화를 써야 하므로 양이 작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무역수지 적자를 내더라도 견뎌낼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국채를 포함해 투자 자산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가 커질 때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약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금융위기 직후나 코로나19처럼 미국의 무역적자가 늘어날 때에도 달러는 강세를 유지했다. 현실적으로 달러를 대체할 대상이 없다고 시장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이 무역부문에서 막대한 적자를 내도 자본 유입을 통해 메워지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금융산업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큰 것도 달러가 위상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현재 미국 가계는 90조달러 정도의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20% 정도밖에 안 된다. 전세계에 채권을 공급해 줄 수 있을 정도로 큰 금융산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세계 투자자금을 미국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달러가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전세계 무역액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도 되지 않는다. 국내총생산(GDP) 비중도 20%에 그치고 있다. 반면 전세계 외환보유고의 60%가 달러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 이외 국가의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화 표시 채무 잔액이 12조7000억달러로 다른 통화의 수십 배에 달한다. 실물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에 비해 결제나 금융거래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달러화 위상 약화에 대한 우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다고 당장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통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위안화는 기축통화보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국가들과 석유나 광산물 결제에 사용되는 지역 통화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중국 당국이 위안화의 위상 강화를 위해 디지털 위안화 발행까지 검토하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위안화의 위상이 높아지려면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야 한다. 자본시장도 지금보다 더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위안화를 사용하는 나라가 늘어나는데, 현재 중국 금융산업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인지 모르겠다. 강한 금융시장의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위안화 위상 강화에 나섰다가는 위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유로화는 달러 다음으로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영향력 확대가 쉽지 않다. 유로는 경제적 조건이 다른 여러 회원국을 묶어 놓은 통화다. 2011년 유럽재정 위기 때 보듯 유로로 인해 혜택을 보는 나라와 피해를 입는 나라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축통화에 걸맞을 정도로 유로화를 공급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금 유럽에는 무역적자를 감수하면서 유로를 세계에 공급하려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이 그 힘을 가지고 있지만, 유로존에 편입된 이후 무역흑자가 늘어나는 등 혜택을 보고 있어 유로화의 위상 강화보다 현 체제 유지 쪽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나라를 하나의 통화로 묶어 놓은 유로화의 특성상 특정 국가가 유동성을 공급하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다.
엔화는 당장의 절하를 처리하기도 바쁘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한 이후 엔화가 빠르게 상승했다. 달러당 124엔으로 2015년 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 중인데, 작년 연말에 비해서 10% 가까이 절하됐다. 엔화가 이렇게 약세가 된 건 연준과 일본은행의 통화 정책 차이 때문이다. 미국 연준은 올해 말에 기준금리를 2%로 만들 계획이다. 반면 일본은행은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
구로다 일본은행총재가 4월 이후 일본 소비자물가가 2% 이상을 기록할 수 있지만, 일본이 수요 견인형 물가상승을 추구하고 있는 만큼 금융완화 정책을 수정할 이유가 없다고 얘기했다. 그 영향으로 미국과 일본의 국채 10년물 금리차가 작년 말 1.4%p에서 현재는 2.0%p로 벌어졌다. 돈이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엔화가 약세가 되는 게 당연하다.
우크라이나 사태 발생 이후 일본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도 엔화를 약세로 만든 요인이다. 과거에는 엔화가 약해질 때 일본 경제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은 다르다. 엔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가 빠르게 늘어난 게 원인이다.
2월 일본의 기업물가지수가 전년비 9.3% 올라 41년래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소비자물가는 0.9% 상승에 그쳤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일본기업들이 그 영향을 제품가격에 전가시키지 못하고 있는 건데, 고유가와 엔저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수익성마저 나빠져 일본 경제가 입는 피해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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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달러의 위상이 높아졌다. 6개 주요 통화에 대비해 달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가 100에 육박하고 있다. 작년 6월에 해당지수가 90 이었으니까 9개월만에 달러가 10% 가까이 절하된 셈이 된다. 당연히 원화를 비롯한 다른 통화는 달러에 대해 약세가 됐다. 이런 움직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연준이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보다 금리 인상 압력을 높이고 있어 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통화 가치 변화는 무역을 포함한 실물 경제와 금융거래에 큰 영향을 준다. 국제 통화 동향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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