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자만하면 안된다"…일생 '業의 본질' 탐구하던 이건희 회장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취재 현장에서 본 巨木
삼성 잘나갈때마다 "지금이 위기"
인재 챙기기 최우선 파격 대우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1등에게는 1등만의 DNA가 있다며 숫자만의 성과가 아닌 성취를 통한 경험을 강조하던 리더, 평생을 거쳐 사업의 본질을 찾는 여정을 그치지 않았던 기업인, 항상 '지금이 위기'라며 방만을 경계해오던 어른, 이건희 삼성 회장 얘기다.


지금으로부터 꼭 7년 전인 2013년 10월28일 이 회장의 '신경영 20주년' 만찬이 열렸다. 왼손은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 관장의 손을 잡고 오른손은 수행 비서의 손을 잡은 이 회장이 신라호텔로 들어서자 카메라의 플래시 라이트들이 일제히 반짝이기 시작했다. 인사를 건네는 출입기자들의 목소리에 잠시 미소를 짓기도 했지만 굳게 다문 입술은 여전했다.

이날도 이 회장은 창업 이래 최대 성과를 칭찬하면서도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달라"고 주문했다. 행사를 위해 준비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현 종합기술원 회장)의 "이 정도면 잘한다는 생각도 했는데 회장님 말씀을 들을수록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는 말에 이 회장이 평생에 걸쳐 위기를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1년여 동안 준비했던 책 '청년 이건희'를 출간하며 신경영 이전과 이후의 이 회장을 취재했다. 전ㆍ현직 계열사 대표 이사들을 비롯해 비서실 임직원, 이 회장이 경영 구상을 위해 머무르던 일본 법인 주재 임직원, 삼성 인재개발원장 등 많은 이를 만났다.


전ㆍ현직 계열사 대표 이사 대부분은 이 회장의 엄격함을 얘기했다. 사업이 잘 되는 계열사 대표를 만날 때마다 이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이 회장의 말을 최고의 칭찬으로 들었던 사람들이다. 반면 이 회장이 병상에 눕기 전 오찬에 참석했던 여직원은 "따뜻하고 애정이 넘치는 경영자"라고 말했다.

비서실에서는 이 회장의 수많은 메모와 의표를 찌르는 질문에 대해 얘기했다. 이 회장이 식사를 하거나 신문을 보며 생각나는 것이 있을 때마다 메모를 남기고 계열사에 이를 전달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비롯해 작게는 새로 출시된 경쟁사 가전을 사용해 보고 개선점을 찾아내 삼성전자 제품에 반영하도록 했다. DVD 플레이어의 경우 발열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3D TV는 안경을 편리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제품 모두 삼성전자가 경쟁사를 물리치고 1위로 올라섰다.


사업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인재 육성과 기업문화다. 휴대폰 사업이 한창일 무렵 인력 부족으로 고민할 때 이 회장은 "대학생, 대학원생들을 공부시켜 5년 내 필요한 인력으로 양성해달라"고 주문했다. "근무 시간을 될수 있는대로 줄이고 줄일 수 없다면 특별 급여나 대우를 좋게 하는 것을 검토하라"고도 했다.


해외여행 도중에는 유명 관광지의 주요 산업을 궁금해하며 질문하고 유럽의 소국에서는 역사를 질문했다. 당시 비서실 관계자는 "24시간, 365일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경영과 연관 지어 생각하고 이를 경영진에게 메모 형태로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업무였다"고 했다.


당시 인터뷰를 했던 신태균 전 삼성 인재개발원장은 이 회장 특유의 '사고의 틀'에 대해 설명했다.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서 바라보던 이 회장은 오랜 훈련을 통해 업의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갖게 됐다. 호텔업을 놓고 서비스업이 아닌 장치산업이라 평하고 반도체 사업에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닌 '속도'를 강조했다. 이런 바탕에서 경쟁사를 기술 개발과 투자의 속도로 압도하는 삼성전자의 '초격차' 전략이 탄생했다. 1993년 반도체시장 진출 이후 지금까지 메모리 반도체시장에서 1위를 놓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 회장 별세와 함께 전후 우리나라 경제 기반을 만들었던 창업주 세대, 글로벌 기업으로 일궈낸 2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가 심어 놓은 1등 DNA와 업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선진국의 견제와 개도국에 추격받고 있는 우리 재계에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 회장이 병상에 들기 전 2014년 신년사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신경영 20년간 글로벌 1등이 된 사업도 있고, 제자리걸음인 사업도 있습니다. 선두 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바꿔야 합니다!"




명진규 소비자경제부장 aeon@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25일만에 사의…윤 대통령 재가할 듯 [포토] 12년만에 서울 버스파업 "웰컴 백 준호!"…손흥민, 태국전서 외친 말…역시 인성갑

    #국내이슈

  • "애플, 5월초 아이패드 신제품 선보인다…18개월 만" 디즈니-플로리다 ‘게이언급금지법’ 소송 일단락 '아일 비 미싱 유' 부른 미국 래퍼, 초대형 성범죄 스캔들 '발칵'

    #해외이슈

  • 올봄 최악 황사 덮쳤다…주말까지 마스크 필수 [이미지 다이어리] 누구나 길을 잃을 때가 있다 푸바오, 일주일 후 中 간다…에버랜드, 배웅시간 만들어

    #포토PICK

  • 첨단사양 빼곡…벤츠 SUV 눈길 끄는 이유 기아, 생성형AI 탑재 준중형 세단 K4 세계 첫 공개 벤츠 G바겐 전기차 올해 나온다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국가 신뢰도 높이는 선진국채클럽 ‘WGBI’ [뉴스속 용어]코코아 t당 1만 달러 넘자 '초코플레이션' 비상 [뉴스속 기업]트럼프가 만든 SNS ‘트루스 소셜’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