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검사로 일하다가 퇴직한 지도 벌써 2년이 돼간다. 현직에 있을 때 퇴직한 선후배들을 만나면 퇴직해서 제일 좋은 것이 '인사에 신경 쓰지 않아서'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나도 검사를 그만두고 나니 여러 가지 변화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매년 이뤄지는 인사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제일 좋다. 검사들은 지방 순환 근무라는 나름의 기준은 있지만 매년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데 발표 전까지는 어디로 전근을 갈지 전혀 모르기에 검사로 있을 때 인사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공직자에게 인사는 어떤 의미일까? 승승장구 잘나가던 어느 검찰 선배가 "중요 보직에서 일하다 보면 생리적 욕구도 참고 당면 과제 처리하다가 비뇨기과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했다. '대체 좋다는 보직이 뭐길래?' 싶다가도, 막상 공직자 입장에서 보면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명예가 가장 중요한 공직자에게, 국가와 국민에게 뭔가 좋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청운의 꿈'을 간직하지 않은 공직자가 어디 있겠나. 오죽하면 '승진을 포기한 공직자(승포자)는 무서운 것이 없다'라고 하는 씁쓸한 말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과연 승진이나 보직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고 해서 국가와 국민에게 소신껏 최선의 봉사를 하겠는가는 의문이고, 경험상 실제로도 그렇다.
요즘 검사라는 공직자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검사 내전' '검사 외전' 책이 인기를 끄는가 하면 마치 검사는 비리를 넘나드는 별종인 듯 선정적으로 표현한 영화나 드라마는 이제 식상할 정도인데, 영화보다 더한 실제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동일한 사건 수사를 놓고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정의로운 검사'라고 옹호하는 편과 '검사가 정치적, 편파적으로 월권을 행사한다'라고 비난하는 편이 나뉘어 나라가 두 동강으로 쩍 갈라지고 말았다.
도대체 이 분열의 근저에 있는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검사,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모두 법을 전공하고 어렵다는 시험을 통과해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자 소신껏 정진해온 사람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지금 검사 인사를 앞두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우리나라가 과연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국가인지, 법을 잘 안다는 사람들이 모인 국가 기관의 법조인들은 과연 민주주의를 제대로 알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일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플라톤은 민주주의의 폐해로 중우정치를 우려했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민주주의 제도 자체는 불완전하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국민 모두가 헌신하고 노력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태동한 이래 수천 년 동안 갈고닦아온 서양도 온갖 불합리와 심각한 시행착오를 겪고 전쟁도 불사하면서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불과 100년도 채 안 되는 민주주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이 완벽하게 이를 실현해내리라는 기대 자체가 난센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동안 짧은 시간에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룬 나라라고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을 품게 되는 현실에 처한 것이다. 민주화를 이뤘다는 자부심에 너무 자만하고 심취하고 안주한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고 문제가 없는지 끊임없이 다듬고 감시하고 수정해야 하는 진행형의 제도다. 민주화를 이룩한 자부심은 이제 접어두고 겸허한 자세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실천할지 국민 개개인 모두가 반성하고 다시금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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