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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바이러스 확산을 닮은 소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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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 과학저술가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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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겪어 본 통증이었습니다. 몸에 퍼진 열기로 눈을 뜨기 어려웠고 온몸을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느낌이 어떤지 알겠더군요. 가까스로 몸을 추슬러 동네 병원 문을 열었을 때 로비를 가득 채운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전염병처럼 무언가 마을을 휩쓸고 지나고 있다는 걸 직감했지요. 접수하고 환자들 틈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데 눈앞에 묘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더군요. 대부분 환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서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픈 몸에도 무언가 열심히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것 같았죠. 간단한 진료와 검사를 마친 후 독감 확정을 받았습니다. 처방전을 받고 지난번 백신 접종 권유를 무시했던 일을 후회하며 아픈 몸을 끌고 약국으로 갔습니다.


독감을 '독한 감기'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있지만, 독감은 분명 감기와는 다릅니다. 감기는 리노바이러스나 아데노바이러스 등이 호흡기 세포에 침투해 일으키는 질병입니다. 독감만큼은 아니지만 감기 역시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감기 처방은 해열진통제나 진해거담제로 증상을 완화하는 약이고 그저 잘 먹고 잘 쉬면 자연적으로 치유됩니다. 감기 바이러스를 직접 치료하는 약은 없지요. 독감도 바이러스지만 감기와 다릅니다. 바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폐로 침투해 급성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지요. 증상은 심한 감기 그 이상이고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르게도 합니다. 다만 감기와 달리 백신이 있죠. 두 질병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재앙이었습니다. 신대륙 발견시 유럽인에 의해 원주민이 학살된 사실도 있지만, 당시 원주민 대부분은 유럽에서 건너온 두창과 홍역 때문에 사망했지요. 먼 나라 이야기도 아닙니다. 조선 숙종 33년 평안도에서 시작한 홍역은 보름 만에 3만 명의 사망자를 냅니다. 당시 인구가 1500만이었으니 지금이라 치면 보름 만에 15만 명이 사망한 겁니다. 우리가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 홍역을 치른다고 표현한 건 이런 유래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류는 백신이라는 대항군을 가지며 바이러스에 해방됩니다.

천연두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출처=픽스니오

천연두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출처=픽스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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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언제부터 이런 백신의 존재를 알아냈을까요? 소(Cow)를 뜻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유래한 백신(Vaccine)은 면역을 제공하는 조치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백신의 존재 이전에 면역을 스스로 터득했다는 게 맞을 겁니다. 천연두인 두창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한 질병입니다. 당연히 민간요법이 있었지요. 천연두를 가볍게 앓는 사람의 수포 딱지를 긁어 피부에 넣기도 했습니다. 민간에서 전해져 오는 요법이 다소 무모하거나 효과는 고사하고 부작용이 있을 수가 있지만, 때론 지혜일 수도 있었습니다. 분명 통계적으로 가장 치료 확률이 높은 처방이었을 테니까요.


이 사실을 놓치지 않은 사람이 영국인 의사 에드워드 제너였습니다. 그는 이런 민간요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무모한 실험을 했지요. 1796년에 소 젖을 짜는 여성의 물집에서 우두 고름을 빼내어 어린 아이에게 주입했던 겁니다. 현대 의학에서 신약을 동물실험도 거치지 않고 바로 임상시험을 한 셈입니다. 게다가 이 어린아이는 제너의 집 정원사의 아들이었죠. 요즘 같으면 갑질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겁니다. 아이는 우두에 걸렸지만 바로 회복했고 제너는 바로 아이에게 천연두 균을 주입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죠. 자신감이 붙은 제너는 자신의 자식을 포함해 23명에게 유사한 실험을 했고 이 방법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냅니다. 그는 이 방법을 '백신'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논문을 발표합니다. 이후 제너는 의사 일까지 그만두고 백신 연구에 몰두합니다. 인류의 재앙인 천연두 근절이 그의 사명이기 때문이었죠. 결국, 인간의 우두 농포를 추출해 건조한 다음 보관하고 필요할 때 주입하는 방법을 개발합니다. 제너의 노력으로 시작해 인류는 1970년대 말 천연두 정복을 발표하게 됩니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하지만 천연두 바이러스는 아직 존재합니다. 미국과 러시아 정부의 연구소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너의 건조 보관 방법도 그렇고 천연두의 연구소 보관에 의문이 생깁니다. 바이러스는 생명체 같은데 보관을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에드워드 제너

에드워드 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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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생명체가 아닐 수 있다는 거지요. 스스로 대사하고 유전정보를 통해 복제와 번식도 해야 생명이라는 정의 기준에 의하면 바이러스는 완벽한 생명체로 보기 어렵습니다. 바이러스는 지름 100나노미터도 되지 않는 크기로 겉껍질이 있고 그 안에 유전자 정보를 담은 RNA 핵단백질로 구성됩니다. 그저 복잡한 단백질로 된 입자 물질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영양분을 주지 않아도 보관이 가능한 겁니다. 어떻게 생명도 아닌 것이 자신보다 큰 존재를 무력화할까요?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해 껍질을 깨고 자신이 가진 유전자를 세포 안에 꺼내 놓습니다. 이게 바이러스가 하는 일의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숙주 세포의 작동에 맡깁니다. 세포는 정체도 모르고 바이러스 유전자를 복제해 수많은 바이러스를 세포 안에서 만듭니다. 세포가 터지고 복제된 바이러스는 다른 세포로 퍼집니다. 우리 몸은 60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고 모든 세포는 1초도 예외 없이 자신을 포함한 세포 안에 들어온 외부 물질이 어느 편인지 증명을 합니다. 마치 신분증 검사가 있는 셈이죠. 신분증도 일종의 단백질이고 세포는 면역세포에 이 신분증을 보여 줍니다. 우리 편이 아니라고 판단한 면역세포는 세포를 살해하지요. 그래서 면역세포를 킬러세포라고도 합니다. 박테리아는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 제거는 이 면역기능이 유일합니다. 자체적 면역기능이 부족할 때 외부의 침입에 대해 대항군을 만드는 것이 바로 백신의 역할이지요. 우리의 면역세포가 바이러스를 인식하는 것은 '겉껍질' 부분입니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다양해 백신을 만들기 어려운 건 이 겉껍질이 200종이 넘고 계속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재앙은 단순한 바이러스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이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약국에 처방전을 제출하고 약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병원에서 본 광경처럼 대부분 환자가 스마트 폰을 보고 있더군요. 그런데 이런 우리 모습이 바이러스 확산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홍역은 MMR 백신으로 2010년에 미국이 홍역 박멸을 선언할 만큼 거의 사라진 질병입니다. 그런데 최근 그 홍역이 부활했고 그 원인이 꽤 흥미롭습니다.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8년 영국에 근무한 한 의사였지요. 그가 MMR과 자폐증 사이의 상관관계를 주장한 겁니다. 물론 이 연구는 오류가 검증되어 의학계에서 사라진 정보가 됐습니다. 그런데 SNS의 확산과 함께 부활한 겁니다. 홍역 괴담의 경우 아동의 의무적 백신 접종에 대한 반대 의견이 오류를 품은 연구가 기반이 되고 제도적 권위에 반대하며 개인 선택을 강조하는 포퓰리즘에 편승했죠. 일명 안아키(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가 유행처럼 번진 겁니다. 덕분에 홍역 백신 접종 거부가 일어났고 거의 사라진 홍역을 부활시킨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이 무척 닮았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용자. 출처=픽스니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용자. 출처=픽스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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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과학 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가 모두 진실이고 도덕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킬러세포와 신분증과 같은 면역기능이 제대로 동작하고 있는지 반추해야 할 지점에 온 겁니다. 외부물질이 세포에 들어온 것처럼 접하는 정보의 옳고 그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거짓이거나 정의롭지 않다면 킬러세포처럼 정보를 죽여야 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습성과 욕구로 정보의 편린에 확증편향을 일으키고 경험적 주장과 논리 그리고 욕망이 버무려지며 손에 들려 있는 도구로 쉽게 복제를 해 IT플랫폼에 실어 나릅니다. 그 확산 방식은 바이러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괴담과 악성컨텐츠로 피해자가 생기고 사회는 병 들어갑니다. 우리가 악성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세포가 되는 거지요. 최근 유명 연예인이 연루된 버닝썬 사건이나 각종 게이트의 중심에도 SNS가 있습니다. 폐쇄적이고 익명성과 개인정보보호라는 울타리 안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죄의식은 상실되곤 합니다. 적게는 모욕감에서 크게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행동이 될 수 있고 그 피해자가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전문가와 시스템이 수많은 정보를 제어할 수도 없고 자정작용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면역이라는 근육을 기르는 거지요.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과 자신 스스로를 의심하고 질문하며 오류는 없는지 윤리적인지 재차 반문하고 증명하며 사실과 정의로움을 찾는 근력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이 정보시대에 사회라는 생명체에 속한 세포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이 아닐까요.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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