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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역전세난'이란 불편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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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쯤 과거 40년 동안 대한민국 부동산시장에서 일어났던 각종 정책과 시장 동향 및 기사 스크랩 등이 잘 정리된 책이 발간됐다. 수록된 내용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1970~1980년대 기사의 헤드라인도 현재처럼 자극적인 단어나 극단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표현이 과도했으나 사회적 비판과 감시 역할을 하고 있는 자보다 없는 자를 대변했으며, 사회의 경종을 울리는 데 순기능을 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다만 과도한 표현이 아닌 잘못된 단어의 사용으로 시장 상황이나 분위기를 왜곡한다면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역(逆)전세난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등장하는데 이 단어를 부정적으로 활용하게 되면 본질이 왜곡된다. 우선 역전세난이라는 말이 왜 '역'이라는 말이 붙었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 통상 전세가격 상승에 힘이 부치고 전세주택을 찾아 헤매는 전세 세입자들의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해 전세난이라고 표현한다. 즉 전세난의 주체는 집 없는 세입자이기 때문에 '난(難)'이라는 단어 자체가 세입자의 어려움을 함의하므로 없는 자의 서러움을 대변한다. 여기에 역이라는 접두사를 붙이면 전세주택을 구하기 힘든 전세난의 반대로 세입자를 구하기 힘든 상황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역전세난의 주체는 집을 가진 임대인이다.

기본적으로 전세난의 원인은 주택 공급 부족이고, 역전세난의 원인은 그 반대인 주택 공급 증가다. 전세난은 임대인 우위의 시장을 의미하고, 역전세난은 임차인 우위의 시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임차인 입장에서는 역전세난을 환영할 상황이다. 다시 말하자면 역전세난의 1차적인 의미는 임차인들의 주거비 부담이 경감되거나 재계약 걱정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신규 주택에 저렴한 전세를 얻을 수 있는 신상 전세주택의 '바겐세일'을 의미한다.


반면 2차적인 의미를 따져보면 임차인들에게 부담이 되는 면이 있다. 통상적으로 전세보증금은 집주인과 임차인 사이에서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받고 이사를 가게 된다. 새로 들어오려는 임차인들이 많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최근처럼 주택공급이 늘어나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면 일부 임대인들은 새로운 임차인을 받지 못해 본인 자금으로 보증금을 조달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역전세난이라는 현상에 대한 2차적인 의미는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임대인들이 계약기간 종료 이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은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고,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일부 주장처럼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기 위해 임대인에게 대출 지원을 해주게 된다면, 전세보증금의 시장가격이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못하게 만든다. 예측하건대 이런 대출 지원은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 노력을 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에 전세가격 수준은 변화가 없게 되고, 보증금 반환 위험이 줄어든 만큼 갭투자 비율도 올라가며 임대인의 도덕적 해이는 더 커질 것이다.

이미 전세보증금을 보호받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는 잘 마련돼있다. 다만 기존 전세보증보험 상품의 가입 대상을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보험료를 조정하는 등 개선의 여지는 있다. 최근 여러 개선 조치가 진행되고 있고 사회배려계층에 대해 보증료 할인제도가 있으나 보험료가 일률적으로 책정돼있다. 공적기금으로 서민들의 보증금 보호를 한다면 보증금 금액별로 보증료율에 차등을 두고 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이면서 전세보증금 규모의 제한 범위를 완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현 상황은 임차인들이 유례 없는 안정적인 전세시장을 맞이하고 있고 일부 임차인들은 보증금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 핵심이자 본질이다. 그래서 역전세난 대신 역전세 현상이라 표현하고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이 줄어드는 것을 환영하면서 기존 보증금 보호제도에 빈틈이 없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준용 한국감정원 시장분석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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