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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31] 노트르담 성당 뒤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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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섬뜩한 해골들 사이에서 두 개의 유골을 발견했다. 그것은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유골 하나가 다른 유골 하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유골 하나는 여자였는데 전에는 흰 색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천으로 만든 옷 조각이 아직 몇 군데 남아 있었다. (…) 또 그 유골을 꼭 껴안고 있는 다른 유골은 남자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등뼈가 구부러지고 머리는 어깨뼈 속에 파묻혀 있으며, 한쪽 다리가 다른 한쪽보다 짧았다. 또한 목뼈가 손상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는 교수형을 당한 시체가 아닌 것이 확실했다. 다시 말해서 그 유골의 주인은 여기까지 찾아와 죽은 것이다. 이 유골을 꼭 껴안고 있던 유골로부터 떼어내려 하자 그것은 순식간에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노트르담의 꼽추)』(1831)의 결말부입니다. 아름다운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가 억울하게 죽자 그를 흠모하던 성당의 종지기 꼽추 카지모도가 에스메랄다의 복수를 하고 그녀의 시신을 찾아가 죽는 내용을 암시하지요. 집시 여인을 사랑하는 성당의 부주교 클로드 신부, 집시 여인이 사랑하는 헌병대장 페뷔스, 클로드 신부의 양아들이자 그를 살해하는 꼽추 카지모도가 벌이는 무시무시한 갈등과 치정과 복수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의 실제 무대가 노트르담 대성당이죠. 위고가 집필할 무렵에는 많이 허물어져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작품이 선풍적인 반응을 얻어서 성당 개축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 작품도 위대하지만 삶 자체가 정의롭고 올곧았습니다. 그는 종교의 타락을 질타했으며 가난한 사람을 위해 헌신할 줄 알았습니다. 유언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신과 영혼과 책임감. 이 세 가지가 신성하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다. 진리, 광명, 정의, 양심. 그것이 신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4만 프랑을 남긴다. 그들의 관 값이다. 내 육신의 눈은 감길 것이나 영혼의 눈은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이다. 교회의 기도를 거부한다. 영혼에서 우러나는 한 사람의 기도만으로 족하다.” 사람살이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작가정신이 도달한 드높은 이상 아닌지요. 진리, 정의, 광명, 양심, 영혼, 책임감. 이 여섯 가지를 갖춘 사람이라면 당신은 최고의 세계시민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감추고 있는 역사의 보고(寶庫)입니다. 관람객이 많아 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죠. 성당 안은 여느 성당과 마찬가지로 엄숙하고 숭고합니다. 한쪽 벽면의 예수상 양 옆에 주련(柱聯)이 붙어 있는 게 특이한데 중국 관광객들을 배려한 듯싶습니다. 한문 글귀가 적혀 있네요. ‘신은광활편우주(神恩廣闊遍宇宙) 주애고심만인간(主愛高深滿人間)’. ‘신의 은혜는 온 우주에 널리 퍼져 있고, 주님의 사랑은 사람들 속에 높고도 깊게 그득 차 있네.’ ‘장미 창문’으로 불리는, 아름답고 거대한 원형 스테인드글라스보다 눈이 더 갑니다.


또 다른 벽면엔 성당 증개축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도면이 있습니다. 12세기에 지어진 뒤 천년 가까이 증개축을 해 온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섬세하게 다듬어진 성당 모형도 눈길을 끕니다.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건물인데 언뜻 보면 잘 알 수 없는 독특한 구조물이 건물 양 옆에 붙어 있습니다. 아치형 지지대들이 외벽을 받치고 있네요. 꼭 거미 다리 같습니다. 처음 갔을 때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겁니다. 나중에 한 번 더 갔을 때 성당 뒤편에 가서야 볼 수 있었지요.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외벽에 덧댄 구조물. 노트르담 성당을 지을 때, 고딕 양식 초기의 고전적 비례를 활용해서 더 높고 더 큰 건물을 짓고자 했을 때, 상층부의 내력을 분산시키는 난제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 대안이 바로 ‘거미 다리’입니다. 외관상 보기 싫습니다. 하지만 장엄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는 푸른색 ‘장미 창문’도 플라잉 버트레스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꼽추 카지모도가 있어 에스메랄다 아가씨가 빛난다는 걸 위고가 말했듯이, 건물의 황홀한 아름다움은 기초 인프라가 기술적으로 받쳐주어야 한다는 걸 뒤편에 돌아가서야 배웁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서정주, <국화 옆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피어난 가을 국화. 아름답고 원숙한 누님에게도 ‘뒤안길’이 있다는 통찰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뒤편이 있지 않을까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우리를 믿어주는 힘. 낮고 어두운 곳에서 도와주는 그 많은 손길들. 우리가 곧잘 잊어서 안 보이는 우리의 뒤편! 길 가는 이여, 세상의 모든 뒤편에 가면 안 보이는 게 새로 보입니다. 뒤편으로 가보세요.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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