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골편지]아 ! 내 배추밭
'올해는 배추값이 장난 아닐텐데...'
8월말경, 좀 늦게 배추 모종을 냈다.
"서둘러 심은 사람들은 곤혹 좀 치루겠다..ㅋㅋ"
이웃들 배추밭을 보며 속으로 고소해했다. '늦게 키운 배추 한포기, 미리 키운 열 배추 안 부럽겠는걸...!'
이른 배추는 그새 많이 자라 장마에 다 녹을 판이었다. 나는 늦은 배추 모종을 스스로 위안하며 100포기를 심었다. 그 옆에 가을 상추도 120포기 심었다.
한동안 배추는 잘 자랐다. 장마를 이겨낸 배추잎은 벌레에 파먹혀 좀 흉해보였다. 그래도 김장을 담는데는 무리가 없겠다.
주변 사람중에는 "김장 때 꼭 배추를 좀 나눠주라"고 당부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 때마다 걱정말라고 큰 소리를 쳤다.
"아뿔싸 !!"
추석을 맞으러 고향에 갔던 날, 마을에는 큰 비가 내렸다. 돌아와 보니 싹이 오르던 알타리 무우도 다 쓸려 갔고, 배추도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수확하면 김장은 되겠다고 안심했다. 헌데 그 배추들이 하나둘 썩어가더니 폭우가 내린 지 일주일쯤 지나서는 열 포기도 안 남았다.
그나마 별로 자라지 않는다. 벌레들은 극성스럽게 배추를 파먹었다. 배추도 자라기를 포기한 모양이다. 폭염과 폭우, 벌레들의 거친 공격에 무너진 배추들..
올 가을 농사가 그렇게 마무리 되려 한다. 이제 고구마와 당귀만 남았다. 오가피 열매도 큰 재미를 보기는 글렀다. 서리가 내릴 즈음 마늘과 생강 좀 심으면 그만이다.
수확이 별로 없는 가을..허전해서 텃밭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세상 일이라는게 모두 내뜻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는 있으나 왠지 부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배추밭을 만들기 위해 토마토, 참외, 상추, 호박넝쿨을 더 걷어내고 좀 넓게 잡았었는데...욕심 이었나 ?
지금 풋고추와 당귀잎, 돌나물, 부추가 남기는 했다. 서리가 내릴 때까지 먹을 수 있는 호박을 배추 심겠다고 다 뽑아버린게 제일 아쉽다.
배추밭이 망가지고 텃밭 돌보기도 멈췄다. 채소가 자라지 않는 밭을 보는 것은 힘겹다. 아직도 다 순응하지 못해서일거다. 배추 걱정은 나만이 아닌 듯 하다. 재래시장에 싼 값의 배추가 풀리자 사람들이 아우성처럼 달려드는 것을 보니 배추 하나로도 달라지는 세상사를 실감한다. 먹고 사는 거 ? 언제나 새털같이 가벼이 여겼던게 부끄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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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부족함이 없어서 늘 만족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아니 부족한 건 그냥 참아내며 적당히 견뎌온 것도 있다. 내가 사는 세상에선 배추 한 포기가 그처럼 중하지도 귀하지도 않았다. 그냥 얻고 싶은 만큼, 가질 만큼은 주어졌으니...지금 벌어지는 '배추전쟁'은 상상이라도 해봤겠는가. 내가 외면했던 세상 인심이며, 인심을 다스리는 정치며 경제, 나는 헛 것을 보고 산 느낌이다.
그것이 이 가을에 주어진 내 결실일런지...겨울이 오기전에 텃밭의 돌도 골라내고, 나무도 한그루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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