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철도청 발령 올해로 공직 40년…비고시 출신으로 유학파·고시파에 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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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왕성상 기자]
[아시아초대석]
조현용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그는 누구인가?
■ 대담=왕성상(중부취재본부장)
조현용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은 성실함이 몸에 베여있다. 별명도 ‘일 벌레’다.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남강뚝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가난’이 그렇게 만들었다. 부지런히 일하고 공부하는 게 살길이란 생각으로 딴 곳에 눈을 돌릴 수 없었다.
2남1녀의 막내인 그가 태어나자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홀어머니와 힘든 생활이 이어졌다. 중학교에 수석합격 했으나 2년을 놀았다. 형이 군에 가 농사지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래들보다 학교와 직장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늦깎이 입학을 해선 3년간 1등을 하며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마산으로 유학 가서도 그랬다. 마산고 2학년 때 친구들은 몸집이 크고 올된 그를 ‘덩치’로 불렀다. 씨름부장으로 경남도 대표선수로 출전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는 등 ‘성실함’은 이어졌다.
그는 1969년 3월 제대하자마자 그해 4월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 10월20일 철도청 직원으로 공직에 몸담았다. 첫 발령지는 협궤선이었던 수여선(수원~여주)의 오천역. 40년 전의 일이다. 거기서 6개월 일하고 철도청 본청으로 옮겼다.
본청에서 7년6개월 있으면서 안 가본 부서가 없다. 운수, 구매, 보선, 감사, 인사, 조직 등 거의 다 거쳤다. 가는 곳마다 성실과 실력을 인정받았다. 8급, 7급, 6급 계속 올라가 1980년 7월16일 시험을 쳐 사무관이 됐다. 공직생활 11년만이다. 10년 뒤 1990년 7월 다시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이어 부이사관(3급), 이사관(2급)으로 올라가면서 외국유학파, 고시출신들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지금 공단 이사장으로서 밑바닥을 아니까 큰 도움이 된다”는 그는 올 연초 직원들에게 보내는 신년사에서 ‘우보천리’(牛步千里)란 화두를 던졌다. 소의 걸음걸이엔 듬직함과 우직함이 있다며 어려울수록 멀리 보고 성실히 일하면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는 눈물이 많다.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뜬 충청지역본부 직원부인 상가(충남대병원)에 가서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6월22일 그의 부인이 갑상선암수술을 한 날에도 그랬다.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그런 것 같다’며 병원에서 엄청나게 울었다.
30대 중반부터 피워오던 담배를 단숨에 끊었다. 주량은 소주 1~2잔. 골프는 칠 줄도 모른다. 오직 일을 위해서다.
<조현용 이사장 주요 이력>
△1945년 12월 30일 경남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출생
△월촌초등(10회). 군북중(12회), 마산고(25회), 경희대 행정대학원
△건설교통부 도시교통운영과장, 부산항공청장
△전국화물자동차공제조합 이사장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부이사장
△한국철도시설공단 상임고문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2008년 8월8일~현재)
※가족 : 서울 출신 정진애씨와 사이에 1남1녀.(모두 결혼했고 10살 된 외손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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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상 기자 wss404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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