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매몰되버린 재생에너지 확대
발전설비 대비 송전망 확충 속도 1/3 수준
기업강제 이전 보다 인프라 확충부터
전력거래소는 지난 2월28일부터 6월14일까지를 '전력 계통 안정화 대책 기간'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 기간 전력 계통이 불안정할 경우 비중앙발전기에 대해 출력제어를 실시한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필요한 수요를 넘어설 경우 전력 계통에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출력을 제어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전력거래소는 이달 들어 총 6일에 걸쳐 낮 시간대에 육지 태양광 발전에 대해 출력제어를 실시한다고 예고했다.
전력거래소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이다. 전력거래소 직원들은 예전에는 수요가 많은 여름에 전력이 부족할까봐 전전긍긍했으나 최근 몇 년 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고 한다. 여름이 아닌 전력 수요가 적은 이른바 '경부하기'가 비상근무 기간이다. 전력망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해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봄과 가을엔 수요가 적은 대신 공급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며 전력망이 불안해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 이렇게 된 주요 원인은 태양광 발전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남짓이다. 이는 약 30%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이 비중을 2030년까지 20%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현재 수준에서도 경부하기에 태양광 발전량이 수요를 웃돌면서 전력망 불안을 초래하는데 비중이 20%까지 늘어나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까.
우리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유럽을 보면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럽에서 하절기에 접어들면서 태양광 출력제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매체는 향후 수개월 동안 40테라와트시(TWh)의 재생에너지가 전력망에 연결하지 못하고 버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25% 증가한 것으로 런던시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과 맞먹는 규모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는 2가지 측면에서 비효율성을 야기한다. 정부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보급하기 위해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생산한 전기를 전력망에 보내지 못한다면 정부 보조금이 낭비되는 것이다. 또한 전력 당국이 출력제어를 명령할 경우 이를 이행한 발전소에는 보상금이 주어진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소비자의 전기요금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영국 옥토퍼스에너지가 출력 제한에 따라 버려진 영국 내 풍력 발전의 규모를 추산한 결과 2025년 한해 14억6702만파운드(약 2조9322억원)에 달했다.
재생에너지가 과잉 투자된 유럽에서는 발전량이 초과하면서 마이너스 요금제까지 등장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해도 이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블룸버그통신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안정적으로 보였던 프로젝트들이 이제는 재평가되고 있다"며 태양광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명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100GW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올해부터 6년간 매년 10~12GW 이상의 재생에너지를 신규로 보급해야 한다. 매일 축구장 20개 면적의 태양광을 설치하는 양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산업단지 지붕부터 영농형 태양광, 수상태양광 등 설치 가능한 부지를 최대한 발굴하고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재생에너지를 많이 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뒷받침할 전력 인프라가 없다면 재생에너지를 전력망에 연결하지 못해 버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이미 2025년 5월 기준 전국 계통 접속 대기 물량은 8.9GW에 달한다. 이 중 4.2GW가 호남에 집중돼 있다.
지난 30년간 국내 발전 설비 용량은 535% 증가했지만 송전 설비 용량은 153% 증가에 그쳤다. 신규 발전 설비의 대다수는 소규모 재생에너지로 전남, 전북 등 일부 지역에 쏠려 있다. 호남 지역의 계통 안정을 위해 출력제어가 빈번했고 소규모 태양광 사업자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주민 수용성을 높여 송전망 구축에 속도를 내기 위해 전력망특별법이 제정됐으나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급기야는 호남의 넘쳐나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 반도체 산업단지를 해당 지역에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됐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늘어난 재생에너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제대로 전력망에 연결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처럼 전력 계통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재생에너지 보급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현재의 지역 편중 현상은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결하겠다고 멀쩡한 기업을 억지로 지역으로 이전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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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만 연연한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이 아닌 전력 계통을 고려한 현실적인 계획 수립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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