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조사 신뢰성 의문
정부 간 정책방향 조율부터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담합' 의혹을 다시 정조준했다. 지난주부터 각 은행의 본사 여신 담당 부서에 최소 3~4명의 조사관이 나가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공정위가 다시 칼날을 들이대자 은행권 안팎에서는 곧바로 '무리수'라는 말이 나온다. 2023년 2월 첫 조사 이후 2년이 지나고도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 시작됐고, 예금·대출금리부터 수수료까지 모두 훑고 나서 끝내 잡은 게 'LTV 정보 공유'라는 점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답정너(이미 답을 정해 놓은) 조사'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LTV가 담합을 논할 대상이 될 수 있느냐도 논쟁거리다. 이미 정책에 의해 상한이 정해져 있고, 조금만 발품을 팔면 확인할 수 있는 정보다. 참고자료일 뿐, LTV를 조정한 시기나 추세도 다 다르다. 은행이 관행적으로 정보를 공유해온 것이 박수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 자체가 시장 경쟁을 제한한 수준의 강성 담합으로 보기에는 억지스러운 점이 있다.
부당이익을 얻었다는 주장도 따져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은행들은 LTV를 낮췄다. LTV를 높여 대출한도를 늘려야 은행은 돈을 번다. LTV를 낮춘 것은 은행의 이익에 반한다는 얘기다. 공정위가 주장하는 담합과 부당이익 모두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 이유다. 공정위가 '객관적 증거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조사가 부실한 것이 아니다'라고 매번 해명을 해야하는 것은 그만큼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얘기다.
LTV를 낮춰 대출한도를 줄인 게 잘못이라는 공정위의 판단은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라는 금융위원회의 기조와도 상충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전원회의를 챙겨 본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소회했다. 공정위와 금융위는 '협의가 필요 없는 사안'이라고 말한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책 방향이 부처마다 달라지는 건 다른 얘기다.
LTV 담합 재조사에 속도를 내기 전에 정부 간 정책 방향부터 조율해야 한다. 기존 논리와 근거가 부족하진 않은지 재점검은 필수다. 이대로는 담합으로 결론짓고 과징금을 부과해도 논란만 초래할 수 있다. 공정위가 '경제검찰'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제 역할을 다하려면 조사 결과의 신뢰가 무너져선 안 된다.
"아침에 출근해보니 모니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어요. 조사받는 동안에는 모든 일이 올스톱이었죠." 2012년 CD(양도성 예금증서) 금리 담합조사 당시 관련 팀에 있었던 직원의 회고다. 공정위는 담합을 입증할 근거를 찾지 못하고 심의 절차를 종료했다. 무혐의로 끝났으니 은행이 이긴 걸까. 은행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업무 마비는 물론 신뢰도에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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