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여파 불확실성 블랙홀
장기화 국면에 경제 부정적 영향
최악엔 국가 신인도 하락 우려
미증유의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경제·금융당국 수장들의 회의체인 ‘F4 회의’는 끝을 알 수 없이 불확실성에 빠져들던 금융시장과 경제상황에 유일한 기댈 곳이었다. 사태 초기 매일 1시간 남짓 진행된 회의에서 나온 긴급한 결정과 메시지로 요동치던 환율과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잦아들기를 바랐고, 난국을 빠르게 극복할 묘수를 기대했다.
사태 이후 한 달 보름 동안 열린 F4 회의는 총 15차례.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고 헌법재판소로 절차를 넘긴 이후 F4 회의는 일주일에 두 번 꼴로, 국무총리 한덕수 권한대행이 탄핵되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가 가동된 이후에는 다시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비정상의 장기화 과정에 대비라도 하듯, 경제·금융당국 수장들이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내놓은 메시지의 특이점도 사라졌다. “각 기관이 높은 경계심을 유지하면서 금융·외환시장을 24시간 점검·대응해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총력을 다해달라.” F4 회의 기조를 이어받은 금융당국도 새해 업무보고 자료를 통해 ‘100조원 규모의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운영하겠다’는 간략한 서술로 금융안정 대책을 다뤘다.

19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앞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세번째)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위원장,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잠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그 와중에 시시각각 변하는 정치상황에 외신과 해외 투자기관들의 우려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잦아졌다. 특히 새해 들어 외신은 미증유의 사태를 야기한 대통령이 체포에 불응하며 수사기관과 대치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 악화는 물론, 정치불안이 장기화하면서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평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지난해 4분기부터 본격화한 환율 불안과 미국 새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지정학적 불안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을 보태기도 했다.
변동성이 완화됐다지만, ’12·3 비상계엄’의 충격도 그대로다. 여파는 이어져 원·달러 환율은 사태 직전보다 약 60원 이상 높은 1460~1470원선에서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1450원선에서 방어하겠다던 목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1500원선도 위험할 수 있다는 안팎의 잇따른 관측에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당국은 그저 외환보유고 4000억달러가 붕괴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금융권을 향해 환율 급등으로 인한 기업들의 상환과 결제 부담을 당장 낮춰줄 방안을 모색해달라고 주문하는 정도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내수 위축, 성장률 하락 등 부진한 경제지표에 시달린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후보의 당선과 취임을 앞두고 가뜩이나 예민해진 증시는 국가 수장의 계엄 선포라는 ‘블랙스완’ 이후 구조적으로 더욱 허약해졌다. 코스피 지수는 새해 들어 우상향 추세를 이어가며 가까스로 계엄 선포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뜯어보면 연기금이 구원투수로 나서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가능성이 컸다. 연기금은 지난해 12월3일 이후 단 3거래일을 제외하고 코스피 시장에서 매수 우위를 기록했다.
앞으로 넘어야 할 파고는 더 걱정이다. 계엄 여파와 불안의 장기화로 인한 새해 최악의 시나리오는 국가신인도 하락이다. 최근 세계 3대 신용평가사는 한 달 만에 한국의 경제수장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 “불확실성 장기화로 인한 부정적 경제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가 거리로 나선 시민들과 함께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2시간 만에 해제하는 과정을 목격한 이후의 언급과 한 달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언급엔 뉘앙스의 차이가 분명했다. 전 세계인이 목도하고 있는 미증유의 사태 한가운데,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는 데 써야 할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임철영 경제금융부 차장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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