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이순신 장군상(像)을 볼 때마다 부끄러운 이유
여름이 되니 광화문광장의 분수가 시원하다. 중력을 거스르며 뿜어지는 물줄기 사이를 아이들이 까르르 까르르 맨발로 뛰어다닌다. 옷은 물에 흠뻑 젖었지만, 얼굴은 마냥 신난다. 그런 천진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번진다.
대한민국의 중심은 서울이고, 서울의 중심은 광화문이다. 나는 직장생활 30년을 ‘광화문’에서 했다. 광화문의 사계(四季)를 호흡하면서 회사에 다녔다. 그때나 지금이나 광화문의 랜드마크는 이순신 장군상(像)이다. 그 뒤로 은행나무가 심어진 화단이 길게 광화문 앞까지 이어졌다. 서울 시민은 일렬로 늘어선 나무들을 사열하며 봄이 오고 가을이 가는 것을 느꼈다.
전업 작가로 독립한 지 5년째. 지금도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 광화문에 나가 글을 쓴다. 광화문 공기를 맡을 때마다 나는 글을 써야 한다는 사명에 몸서리친다.
오세훈 시장 시절 광화문 풍경은 크게 변했다. 화단의 은행나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광장으로 개조했다. 광장을 조성하려다 보니 화단이 사라졌다. 문제는 새로 만든 광장에, 흔하디흔한 세종 상(像)을 세웠다는 것이다. 세종 상이 들어서면서 21세기 대한민국 광화문광장이 조선조 육조(六曹) 광장으로 퇴행했다.
광화문은 국가상징도로의 출발점이다. 선진국 국가상징도로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라를 세운 건국 대통령이나 나라를 구한 영웅의 기념상을 세운다. 그리고 그 나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전쟁 기념물을 세운다. 그런 광장에 이순신 뒤로 세종이 들어서면서 모양이 우습게 되어버렸다. 광화문광장에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든 현대사 영웅의 동상이 있어야 한다.
지난해 여름 광화문광장이 또 한 번 변신했다. 차도를 줄이고 광장을 더 넓혔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순신 상 앞쪽에 표석 30여개를 설치했다는 점이다. 이순신 상을 정면으로 봤을 때 오른쪽에 있는 표석들은 이순신의 해전(海戰) 기념물이다. 첫 승전인 옥포 해전을 비롯한 12개 해전을 기록했다. 20개가 넘는 왼쪽의 표석들은 난중일기에서 발췌한 어록이다. 영웅의 어록은 시공간을 초월해 울림이 크다.
나는 이순신 장군상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이순신의 수군(水軍)이 바다에서 일본 함대를 격침하던 1590년대를 돌아가 보자. 이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대항해시대와 맞물린다. 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의 범선들이 대양을 종횡으로 누빌 때다. 조선을 얕잡아보고 전쟁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장수를 만나 결국 권좌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누구나 이순신의 승전(勝戰)을 이야기한다. 그의 기발한 전략을 논한다. 학익진이 어떻고…. 최근의 ‘명량’과 ‘한산’부터 얼마나 많은 이순신 해전 영화가 만들어졌던가.
그런데 돌이켜보자. 조선의 국왕은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어버린 수군(水軍)에 어떤 상을 내렸던가. 나라를 지키려 피 흘려 싸운 의병장들을 어떻게 대했던가. 압록강 건너 명나라로 피신하려 안간힘을 썼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와 어떤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했는지 우리는 기억한다. 자신을 (신)의주까지 수행했던 신하들에게 가장 큰 상을 내렸다. 이른바, 호종공신(扈從功臣)이다.
이순신이 죽고 나자 거북선은 사라졌다. 철갑선은 폐기되었고, 드넓은 바다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을 가진 국왕이었다면 거북선을 개량·발전시켜 철갑전함을 건조했을 것이다. 철갑전함 선단을 구축해 일본의 재침(再侵)에 대비했을 것이다. 조선의 국왕들에게 이순신은 잊힌 존재였다. 17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300년 이상 조선에는 사실상 해군이 없었다. 연안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이 전부였다. 고종 때 한 대가 전부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이순신의 승전사는 세계 해전사에 기록된다. 이순신의 해전은 흔히 넬슨 제독의 그것과 비교된다. 이순신을 ‘동양의 넬슨’으로 세계 최초로 평가한 것은 1892년 일본 육군 산하의 기관지에서 펴낸 책 ‘조선 이순신전’에서였다. 이후 ‘제국국방사론’(사토 데쓰타로), ‘해상권력사 강의’(오가사와라 나가나리) 등에서 이순신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1805년, 트라팔가르곶에서 넬슨 제독의 영국함대가 나폴레옹 연합함대를 격파했다. 이후 영국은 나폴레옹 군대를 유럽 대륙에 묶어두고 대양을 마음껏 누비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해나갔다.
런던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가 트라팔가르 광장이다. 이곳에 50m 높이의 넬슨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이 광장은 1830년대에 조성되었다. 이 무렵 영국의 주요 도시에도 역사적인 승리를 기념하는 광장을 만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해군과 관련된 중요 지점의 태번에 ‘트라팔가르’ 상호를 붙였다. 구 왕립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그리니치에 있는 ‘트라팔가르 태번’이 대표적이다.
한국인은 해양지향성 운명을 타고난 민족이지만 조선의 왕들에게 바다는 낭떠러지였다. 그들의 세계관을 지배한 것은 중국뿐이었다. 당나라를 상대로 해상무역을 하며 바다를 개척한 통일신라의 장보고 같은 인물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1653년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서기 하멜은 13년간 반(半)노예 상태로 머물며 조선의 민낯을 보았다. ‘하멜표류기’를 읽으며 충격적이었던 것 중의 하나는 조선 왕이 본 지도다. ‘하멜표류기’에 따르면 국왕이 갖고 있던 지도에는 중국과 시암(siam) 밖에 없었다. 시암은 태국의 옛 이름이다. 그러니 중국 너머의 세상은 관심조차 없었다. 하멜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일본으로 보내 달라고 여러 번 간청했지만, 조정은 그때마다 거절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현실적인 것은 대한해협을 건널만한 선박이 없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언어생활은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우리는 전국 구석구석을 가리키는 말로 ‘방방곡곡(坊坊曲曲)’이라는 말을 쓴다. 방(坊)은 동네라는 뜻이고, 조선 시대에는 면(面)을 의미했다. 21세기를 사는 지금도 아무 생각 없이 방방곡곡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어에는 방방곡곡이라는 표현이 없다. 진진포포(津津浦浦)다. 해양 국가라는 뜻이다. 해발 3000m가 넘는 산이 수두룩하지만. 진(津)은 나루터를 의미한다. 포(浦)는 조수가 드나드는 바닷가를 뜻한다.
우리나라 해안에도 당진, 옥포, 목포, 제물포 등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진과 포는 대양을 향한 출구(出口)가 아니라 내륙의 물류를 담당하는 입구(入口)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의 국왕들은 반도라는 천혜의 조건을 무역과 해양영토 개척의 기회로 삼지 않았다.
20세기 세계는 유라시아 공산주의 대륙 블록과 해양자유민주 세력의 대결이었다. 이런 그레이트 게임 속에서 한국인은 대륙을 지향할 때 속국 신세를 면치 못했고 해양을 지향할 때 자유와 번영을 누렸다. 한국이 건국 70여년 만에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올라선 것은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 등 해양자유민주세력과 어깨동무를 한 결과다.
기업보국(企業報國)의 꿈을 품은 젊은 사업가 호암 이병철의 가슴을 뛰게 한 역사 인물은 단 한 사람, 장보고였다. 아산 정주영이 1960년대 영국에서 차관을 얻을 때 내민 것은 오백원 지폐에 그려진 이순신의 거북선이었다. 아산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벌써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오. 우리가 당신네보다 300년 이상 조선 역사가 앞서 있었소. 다만 그 후 쇄국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어져 국민의 능력과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 우리의 잠재력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소.”
우리는 관습적으로 영조와 정조를 가리켜 ‘개혁 군주’라고 칭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세상 모든 국가의 목표는 단 하나다. 부국강병(富國强兵)! 그래야 다른 나라에 침략당하지 않고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부녀자들이 유린당하지 않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짓밟힌 조선의 부녀자들을 생각하면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다.
부국강병에 기여한 조치들만이 후세에 개혁으로 평가받는다. 영조와 정조의 개혁정책들이 조선의 부국강병에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고려 시대에는 4만5000명의 강력한 중앙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조선 시대 상비군은 오합지졸의 수천 명에 불과했다. 성리학에 빠져 상무 정신을 상실한 조선은 차마 국가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사람은 배가 불러야 염치를 차릴 줄 안다. 그래야만 민주정(民主政)도 생각하고 문화예술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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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위대한 해전을 기념하기는커녕 이순신을 내팽개쳤다.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지는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상을 볼 때마다 한없이 죄송하다. 300년간 바다를 잊고 살았던 한국인에게 바다의 길을 열어준 영웅은 누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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