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전주 콜센터 실습생 사망 조명
취업률 집착하는 학교, 학생을 '숫자'로 봐
현장실습 제도 60년, 여전히 교육 환경 부실
"사랑합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제 부로 끊어 달라고 했는데 왜 아직 되냐고." "아, 고객님. 지금 해지 연장이나 재약정을 하시면 즉시…." "야, 내가 그런 거 저번에 다 듣고 안 한다고 그저께로 날짜 잡았잖아! 뭐 하자는 거야!" "고객님 해지 연장하시면…."
영화 '다음 소희' 속 소희(김시은)의 일과다.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고객센터에서 현장 실습한다. 정보통신 대기업 업무를 하청받아 대행하는 회사다. 소희는 파티션으로 막힌 1m도 안 되는 책상을 여덟 시간 이상 지킨다. 정해진 콜 수를 채워야 퇴근한다. 부서는 최소 1년 이상 경력자만 배정된다는 세이브팀. 상대가 해지 신청 고객이라 기본적으로 불만투성이다. 방어에 실패하면 불이익을 받는다. 월급을 등급에 따라 차등해서 준다. "여기엔 160만 원이라고 나와 있는데요?" "소희는 아직 수습 기간이잖아. 실습생이고." "인센티브는요?" "그것도 기본 수치에 많이 떨어지잖아."
2017년 전주 콜센터 실습생 사망 사건에 기반한 내용이다. 가혹한 노동환경에 힘겨워하다 5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정주리 감독은 현장실습이란 이름으로 지옥에 내몰리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취업률에만 몰두하는 학교, 관리·감독하지 않는 교육부, 제도를 악용해 아이들을 착취하는 업체들…. 하나같이 숫자에 목을 맨다. 학교와 교육부는 취업률, 업체들은 실적이다. 제각각 높이려고 차등과 차별을 불사한다. 그렇게 생긴 병폐는 매번 눈에 띄는 성과에 가려진다. 사달이 나도 마찬가지다. 저절로 수습되기만을 탐망한다.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등 비슷한 사건은 여러 번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원인이 구조적 결함이기 때문이다. 마이스터고와 일반 특성화고는 예산 분배부터 다르다. 2010년부터 5년 동안 전자는 연평균 82억 원, 후자는 36억 원을 지원받았다. 중학교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당연히 마이스터고에 몰렸다. 기업들도 선호했다. 그 사이 일반 직업계고는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취업률에 집착한 나머지 학생들을 '사람'이 아닌 '숫자'로 보기 시작했다.
학교가 지자체나 관계 기관의 협조 없이 자력으로 업체를 발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것 말고는 참여를 유도할 방법이 없다. 인력 파견 업체로 전락해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제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진 신경 쓰지 않는다. '다음 소희' 속 담임선생님의 말대로다.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뭐. 나는 안 그럴 줄 아냐? 오늘도 교감한테 엄청 깨졌네. 아니, 그 녀석들 공장 나갔던 것들이 다 돌아와. 몇 달만 더 버티라니까. 소희야, 버텨야 한다."
현장실습 제도는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에 명시되면서 정식 도입됐다. 학생들이 재학 중 지정된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이수하게 됐다. 당시에도 산업체의 적극적 참여 부족, 체계적인 실습 프로그램 마비, 관련 예산 부족 등의 문제는 속출했다. 산업 현장에서 교육 환경을 제공할 준비도 전혀 돼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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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이 지난 지금도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 전면 폐지'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두 달 만에 보완·수정한 방안을 내밀고 말을 바꿨다. 안전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에 한한다는 단서를 달았을 뿐, 사실상 이전 제도를 답습했다. 학생들은 여전히 '지나가는 인력'으로 취급받는다. 교육부는 현실론을 이야기한다. "부모가 원하고, 학생이 원하고, 사회가 원한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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