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도장 위조했는데 무혐의"…전세사기 피해자 두 번 울린 法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몰래 임차권등기 말소
법무사, 포토샵으로 도장 이미지 만들어 제출
검찰 "출력 안된 전자문서 형법상 문서 아냐"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뒤 보증보험을 통해 가까스로 보증금을 돌려받은 20대 임차인이 집주인이 위조한 전자문서 탓에 또다시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집주인 측이 임차인의 도장 이미지까지 위조해 권리관계를 바꾼 것이다. 검찰은 위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문서가 아닌 전자문서라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18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3월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등 혐의로 송치된 법무사 A씨(62)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6월 불기소 처분한 데 이어 서울고검의 재기수사명령이 내려진 뒤에도 기존 판단을 유지했다. 재기수사명령이란 상급검찰청에서 검사의 불기소 결정이 잘못됐거나 부족하니 다시 수사하라는 지시다.
전말은 이렇다. 서울 금천구 한 오피스텔을 임차했던 최모씨(28)는 2023년 4월 임대차계약 종료 이후 보증금 1억4800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최씨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해둔 상태였고, 두 달 뒤 HUG로부터 보증금을 지급받아 대출금을 변제했다.
이후 1년 3개월이 지난 2024년 9월 HUG로부터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았다. HUG 측은 '임차권등기를 해제했느냐'며 '현재 말소된 상태라 다시 보증금 반환을 요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놀란 최씨는 등기부를 다시 확인했고, 자신의 임차권등기가 반년 전 말소된 사실을 알게 됐다.
집주인 측 법무사 A씨가 최씨 동의 없이 임차권등기명령 해제신청서와 제출인 위임장을 작성한 것이었다. A씨는 최씨 도장 이미지까지 포토샵으로 만들어 전자문서에 삽입했고 위조된 전자문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임차권등기는 세입자가 집을 비운 뒤에도 기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등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다. 특히 HUG가 보증금을 대신 지급한 경우에는 향후 채권 회수와 권리 보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법조계에 따르면 임차권등기 말소 시 HUG의 채권 회수 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임차인에게 다시 법적 부담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최씨가 항의하자 A씨는 "새 집주인의 강한 의지가 있어서 일을 급하게 진행하다 보니 생긴 일"이라며 "이미 (최씨가) HUG로부터 보증금을 돌려 받았기 때문에 (임차권등기를 말소해도) 권리상의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 사건에서의 집주인은 전세사기를 저지른 과거 집주인이 아닌 경매에 넘어간 오피스텔을 매입한 새로운 집주인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간혹 전세사기를 친 집주인이 전 세입자를 상대로 '보증금을 돌려받았으니 임차권등기를 말소해도 된다'고 속여 해제 신청을 권유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 조효동 법무법인 태유 변호사는 "임차권등기는 보증보험이 보증금 액수를 회수하기 전까지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장치"라며 "임차인 동의 없이 말소했다면 법적 책임 여부를 엄격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HUG에서도 보증금 반환 이후에도 절대로 임차권을 말소해선 안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의 불기소 결정문에는 "피의자가 고소인으로부터 승낙이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신청서 등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적시돼 있었다. 또 최씨가 항의하자 A씨가 카카오톡으로 '저의 잘못이고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는 취지의 사과 메시지를 보낸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위임장에 사용된 도장 역시 실제 인감과 형태가 달랐다. 인감 증명서상 도장은 타원형이지만, 제출된 위임장에는 원형 도장이 사용됐다.
그런데도 검찰의 결론은 '혐의없음'이었다. 해당 서류가 종이가 아니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A씨가 한글 프로그램으로 신청서 등을 작성한 뒤 전자소송 사이트에 파일 형태로 올렸을 뿐 이를 실제 출력해 행사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출력하거나 출력된 상태로 사용하지 않은 이상 '형법상 문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서울남부지검 측은 공보 대상이 아니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또다른 검찰 관계자는 "전자문서의 문서성을 부정하는 기존 판례가 있기 때문에 사문서위조죄 적용이 어려웠을 수 있다"며 "사전자기록문서위작죄 등을 검토할 수 있겠으나, 이 사건에선 독립적으로 증명 기능을 수행하는 전자정보시스템상 기록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혐의도 적용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판단의 근거가 된 판례는 전자문서와 전자소송이 일상화하기 이전인 2006~2007년 나온 대법원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형법상 '문서'를 '계속적으로 물체 위에 고정된 것'으로 해석하면서, 컴퓨터 화면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 파일 등은 계속성이 없는 만큼 문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법조계에선 해당 판례들이 스마트폰 전자문서, 전자계약, 전자소송이 본격화하기 이전 나온 결정인 탓에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미 법원 서류 제출부터 부동산 계약, 금융거래, 공공행정 상당수는 전자문서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전자문서 사용이 일상화한 상황인데 형법은 여전히 종이문서 중심으로 구성된 측면이 있다"며 "기술 발전 속도를 입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세라 법률사무소 예감 변호사도 "전자소송 시스템 범위가 넓어지는 상황에서 처벌 공백을 없애기 위해 문서의 범위에 관해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민사소송으로도 다퉜지만, 형사절차에서 위조 여부가 인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남부지법은 결정문에서 "신청인의 동의 없이 신청이 이뤄졌는지 여부는 집행법원이 판단할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33년간 검사로 재직한 임채원 법무법인 민 변호사는 "실질적으로 타인 명의를 도용해 법원에 서류를 제출한 행위인데도 처벌이 어렵다는 건 국민 법 감정과 괴리가 크다"며 "수사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법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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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G 역시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HUG 관계자는 "임차권 말소가 임차인의 고의나 과실이 아닌 불법 행위로 이뤄진 것이라면 참작 사유가 될 수 있다"면서도 "현재 (A씨가) 형사절차상 무혐의 상태인 만큼 자체적으로 불법 여부를 단정하기는 어려워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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