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하나의 삼성" 외치더니 결국 '성과급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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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X(디바이스경험)의 헌신 없이 DS(디바이스솔루션)는 없다."


18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 입구. 총파업을 사흘 앞둔 삼성전자 노사의 마지막 담판 직전, 청사 복도는 뜻밖의 고성으로 흔들렸다.

삼성전자에서 휴대전화 갤럭시를 비롯해 TV, 가전 등을 생산하는 DX 부문 노조 조합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교섭장 입구에 길게 도열했다. "하나의 삼성, DX 차별 중단", "DS만의 삼성이 아니다." 직설적인 문구만큼이나 표정은 날카로웠다. 잠시 뒤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교섭 대표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사측을 상대로 단일대오를 과시해야 할 협상장 입구에서 정작 노조 양측은 팽팽하게 대치했다. "왜 우리 요구안은 계속 빠지느냐"는 DX 노조의 거센 항의에, 교섭단 쪽은 "이미 논의 중인 사안"이라며 황급히 회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표단의 등 뒤로 "결국 DS(반도체)만 챙기는 것 아니냐"는 항의가 복도에 오래 남았다.


노동조합이라는 한 지붕 아래 모였지만 이들은 이날 철저히 남이었다. 사측과 맞서야 할 중대 기로에서 '노사(勞使)' 갈등보다 '노노(勞勞)' 갈등의 민낯이 먼저 터져 나온 셈이다. DX 부문의 불만은 깊고 오래됐다. 반도체 호황기마다 DS 부문 직원들이 연봉 절반 수준의 성과급을 챙길 때, 스마트폰과 가전으로 묵묵히 버팀목 역할을 해온 DX 내부에선 "우린 삼성전자 직원이 맞느냐"는 자조가 반복됐다. 굵직한 과실은 결국 반도체로만 향한다는 누적된 박탈감이다.

이런 균열은 단순한 성과급 불만을 넘어섰다. 이날 중노위 현장에서 드러난 건 임금 협상이라기보다 "누가 삼성의 진짜 중심인가"를 둘러싼 사업부 간 힘겨루기에 가까웠다. 회사는 하나지만 이해관계는 사업부 단위로 갈라지고 있다. 과거 삼성은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사불란한 조직문화로 움직였다. 그 문화의 공과(功過)는 별개로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의 삼성 내부에서는 공동체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사측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인공지능(AI) 반도체 전쟁까지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노사 갈등을 넘어 노노갈등까지 관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노조 역시 더 이상 '삼성전자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기보다 사업부별 이해관계의 대리인처럼 움직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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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노사 협상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든, 수면 위로 불거진 노노갈등의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당장의 생산 차질이나 경제적 타격에 이목이 쏠리겠지만 삼성전자에 남을 진짜 후유증은 따로 있다.? '지금, 누구를 위한 노조인가'라는 점이다.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던 세종청사 복도의 풍경이 가장 묵직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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