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압니다." 어떤 정치인에 관한 사무치는 마음이 녹아 있는 메시지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의 박석에는 그런 추모의 글이 빼곡하게 놓여 있다. 그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감정의 사연이 녹아 있는 공간.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저미는 이들에게 5월은 슬픔의 계절이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지도자라는 이유만으로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층위를 설명하기 어렵다. 뒤늦게 그의 진심을 안 것에 관한 회한이 스며들어 있다.
강자 앞에서는 당당하고, 약자 앞에서는 부드러운 정치인. 말은 거칠고 투박해도 역사의 대의 앞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인물. 한국 정치사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많은 이가 정치인 노무현을,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한국인이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인물은 노무현이다. 2014년에도, 2019년에도, 2024년에도 그의 이름이 첫 번째였다. 1000만명의 관객이 찾은 영화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의 억울한 사연을 외면하지 않았던, 엄혹한 시대에 맞섰던 고졸 출신 변호사의 실제 사례가 바로 정치인 노무현이다. 추앙받는 인물로 역사적인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여전히 '사회의 그림자'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죽음은 희화화되고, 혐오의 소재로 소비된다. 2009년 5월의 그날 이후, 17년째 반복되고 있다.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삶과 죽음이 놀이처럼 소비되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매일매일 새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사위인 곽 의원은 디시인사이드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의 게시물에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나 뿌리 깊은 곳까지 혐오의 정서가 뻗어 있는지, 그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는지 대다수는 모른다. 혐오가 반복 소비되는 공간에서는 타인의 비극조차 놀이의 재료가 된다.
정민철의 '1020극우가 온다'는 바로 그 메커니즘을 추적한 책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혐오를 놀이로 학습한 'MH 세대'가 자라나 마주한 세상이 바로 지금이다." 자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임 채팅방 등에서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그 안에 녹아 있다.
어른들의 무지와 오판으로 아이들에게 번져 나간 혐오의 독버섯을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담하다. 그들이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것이란 막연한 낙관에 기댈 상황이 아니다.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하면 아이들이 변할 것이라는 시선도 경솔한 접근이다.
이미 현실이 된 1020 극우의 물결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게 순서다. 원인을 찾아야 해법이 보인다. 사회학자와 정치학자,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의 얘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누가 옳은가보다 중요한 건, 혐오를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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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놀이가 되고, 타인의 아픔이 조롱받는 세상에 안전지대는 없다.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혐오의 늪에 빠질 수 있고, 언제든 자기 아픔이 유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참담한 카운트다운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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