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대미불사(大米不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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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바둑에서 여러 개의 돌로 이루어진 곤마를 대마라고 한다. 대마가 잡히는 경우 패배할 가능성이 크므로 기사는 온 힘을 기울여 살려내려 하기 때문에 쉽게 잡히지 않는데, 이를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 한다. 이 용어는 바둑 외에도 대기업이 도산 위기에 있을 때 그 파급 효과를 고려해 정부가 대기업을 구제해주는 경우에도 사용된다. 영미권에도 ‘Too big to fail(실패하게 두기에는 너무 크다)’이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나라 농업에서 쌀은 그야말로 대마다. 우리나라에서 농사라고 하면 흔히 쌀농사를 생각하고 실제로 농업인의 절반 이상이 쌀농사를 짓고 있다. 쌀값이 하락하는 경우 농가소득과 농촌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작지 않기 때문에 쌀값 유지는 우리나라 농정의 최우선 과제였고 정부는 시장 개입을 통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어 왔다. 대마불사가 아닌 대미불사(大米不死)라고 부를 만하다.

쌀이 우리나라 주식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쌀 소비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조만간 육류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쌀값 유지를 위한 정부의 개입으로 쌀 생산량은 소비보다 더디게 감소하고 있어 거의 매년 쌀이 남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쌀 수요량을 넘어선 생산량은 지난해 27만t, 올해 15만t에 이른다.


수요량보다 공급량이 많다 보니 지난해부터 쌀값은 계속 하락했고, 정부는 대마를 살리기 위해 시장에서 남는 쌀을 매입하는 시장격리를 시행했다. 정부가 지난해와 올해 쌀 시장격리에 사용한 비용만 해도 약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는 쌀 수요량보다 생산량이 많은 경우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쌀에 대한 정부의 시장개입을 더 강화하겠다는 소리다.

지금도 쌀이 남아도는데 쌀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쌀 재배면적 감소 폭이 줄어 공급과잉이 더 증대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논에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심는 경우 쌀과의 소득 차액만큼을 지원해 쌀의 생산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사업을 시행하면 쌀 공급과잉이 심화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쌀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농가 입장에서는 쌀 생산을 줄일 이유가 없다. 쌀이 남더라도 정부가 매입해주기 때문에 쌀을 재배하면 경영상 리스크가 거의 없는데 불확실성이 만연한 다른 작물 재배를 선택할 리가 없다. 특히 쌀은 기계화율이 거의 100%인데 굳이 품을 더 들여가며 다른 농사를 짓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을 보면 시장격리를 의무화하고 논 타작물 재배지원 사업을 시행하더라도 2030년까지 연평균 초과 생산량은 43만t에 이르고 예산도 1조원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무적 시장격리하에서는 다른 작물 재배 전환 유도가 어려우며 쌀시장은 만성적 공급과잉 상태에 빠질 것이다.


바둑에서 대마는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 그러나 대마만 쫓다가는 게임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대마는 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주위에 다른 길들이 많다. 대마를 살리면서도 새로운 활로 모색을 위한 포석을 두고 집을 넓혀나가야 승리할 수 있다.


우리나라 농업의 발전을 위해 푸드테크, 스마트팜 등 새로운 활로 모색이 필요하다. 아울러 쌀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점차 줄여나가고 시장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시장기능이 회복되면 쌀 공급과잉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정부의 보이는 손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대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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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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