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증권사' 돈가뭄 속 실적혹한기…구조조정 파도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자금시장 경색으로 증권사들의 돈줄이 말라가고 있는 가운데 실적이 급감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5곳에 달했던 '1조 클럽' 증권사는 올해 한 곳도 나오지 못할 가능성도 대두됐다. 유동성이 부족한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이미 구조조정은 시작됐다.
◆전단채 발행 급증·발행어음형 CMA 역대 최대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증권사들이 연이어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전단채) 등의 발행을 늘리며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CP는 자금조달 목적의 발행어음으로 신용이 양호한 기업이 단기적으로 돈을 빌릴 때 발행한다. 전단채는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자금을 전자 방식으로 발행·유통하는 금융상품으로 증권사들의 자금 융통 수단 가운데 하나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지난 7일 400억원어치의 3개월 만기 A2+ 등급 전자단기사채(STB)를 연 6.3%에 발행했다. 같은 날 IBK투자증권도 연 5.95%에 3개월 만기 A1 등급 전단채를 발행했다. 대형 증권사 또한 자금조달에 힘에 부치긴 마찬가지다. 같은 날 하나증권도 200억원 규모의 A1 등급 전단채 3개월물에 대해 연 5.8%의 금리를 제시하고서야 발행에 성공했다.
증권업계 전단채 발행액은 급증 추세다. 메리츠증권이 9월 1000억원에서 5904억원으로, 신영증권은 9월 1600억원에서 4400억원으로 규모가 커졌다. 대신증권은 9월에 전단채를 발행하지 않았으나 지난달 900억원을 발행했다. 교보증권의 지난달 전단채 발행액은 1조6650억원으로 전월(1900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8배 이상 뛰었다. CP·전단채 발행 한도도 늘어나고 있다. IBK투자증권은 기존 대비 5000억원, BNK투자증권은 800억원, 현대차증권은 3000억원 늘렸다.
증권사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1년 이내 단기 금융상품인 발행어음형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도 급증추세다. 지난해 연말 7조4646억원에 달했던 잔고는 지난달 12조7183억원으로 70% 이상 증가하면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16일에는 이보다 더 증가한 12조7193억원으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증권사(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만 발행이 가능하다. 초대형 증권사 역시 사정은 녹록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사라진 1조 클럽
자금난에 허덕이는 가운데 실적은 악화일로다. 지난해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긴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금융지주(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키움증권 등 5개 증권사는 올해 연간 영업익 1조원을 넘기지 못할 전망이다. 3분기 실적을 포함한 주요 증권사들의 올해 누적 영업이익은 메리츠증권이 8235억원으로 가장 많고 미래에셋증권(7558억원)·삼성증권(5511억원)·한국금융지주(한국투자증권·5050억원)·키움증권(5197억원)·NH투자증권(3845억원) 순이다.
지난해 영업이익 1위 한국금융지주는 올해는 8815억원에 그치며 3위로 밀려날 전망이다. 1조293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NH투자증권도 올해 5162억원가량만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증권(1조3087억→7038억원), 키움증권(1조2089억→6761억원) 등도 영업이익이 많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에셋증권의 연간 영업이익이 9000억원대로 '1조 클럽'에 가깝긴 하지만 4분기 상황이 더 안 좋을 것을 감안하면 쉽지 않아 보인다. 4분기 시장 전망치는 1996억원에 그쳤다. 유일하게 메리츠증권만 올해 1조204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전망치대로 4분기에 1970억원의 영업익을 기록하면 메리츠증권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기게 되지만, 4분기 업황이 더 침체할 것으로 보여 장담할 수 없다.
◆이미 시작된 구조조정
증권업계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흉흉한 상황이다.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대리급 이상부터는 전부 전문계약직인 경우가 많다. 이에 실적 악화, 자금 시장 경색 등을 이유로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케이프투자증권은 지난 1일 사내 공지를 통해 직원들에게 법인·리서치조직 폐쇄를 결정했고 연말까지 정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최근 PF 사업을 진행한 기업금융(IB) 부문의 감원을 검토, 다올투자증권은 채권구조화팀 6명에 대해 계약 만료 후 재계약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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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소형 증권사들의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해 출범한 '제2의 채권시장안정펀드'에 상당수 증권사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을 신청했다. 신청이 가능한 중소형 증권사는 SK증권·다올투자증권·이베스트투자증권·유진투자증권·한양증권·부국증권·케이프투자증권 등 7개사다. 첫 집행은 다음 주에 시작되며 신청사별 지원 한도는 2000억원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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