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한 스튜디오에서는 과거 번성했던 뉴저지주의 쇼핑몰이 시간이 지나면서 폐쇄되고, 방치되다, 결국 철거되는 모습을 담아낸 사진전을 이달부터 진행 중이다. 뉴저지주 출신 사진작가 필립 부엘러의 작품들이다.


뉴저지주 웨인힐스몰은 1973년 문을 열었다. 이제는 사라진 이 쇼핑몰을 기억하는 현지인들은 "가족들과 함께 쇼핑하거나, 동네 친구들과 만나는 지역의 대표적인 커뮤니티센터였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서서히 손님이 줄어들더니 10만㎡ 규모 쇼핑몰 곳곳에 빈 상점 자리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빈 구역을 봉쇄한 채 계속 운영을 이어갔지만, 점점 문을 닫는 상점은 늘어났다. 카운티 차원에서 죽어가는 몰을 살리기 위한 도시계획 연구가 시작된 게 2006년. 그리고 몇해 되지 않아 웨인힐스몰 세입자는 단 4명으로 줄어들었다.


손님도, 상점도 없는 쇼핑몰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웨인힐스몰은 무려 10년 이상 사실상 텅 빈 채 흉물처럼 방치됐다고 한다. 그리고 2020년께 철거됐다.

현재 브루클린에서 전시 중인 부엘러의 작품들은 철거 전후의 모습들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한때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산타클로스가 아이들을 만나는 장소였던 추억의 무대는 폐허가 돼 무너져내렸다. K마트의 흔적은 오랜 간판, 낡은 카트 정도다. 월든북스 매장에는 관 그림과 함께 'R.I.P.(rest in peace·편히 잠드소서)'라고 적힌 종이가 발견됐다. 음반매장 샘 구디의 내부 인테리어 장식들도 다 뜯긴 채 버려져 있다.


사라진 것은 웨인힐스몰만이 아니다. 웨인힐스몰과 함께 1973년 문을 연 K마트는 2000년 파산해 시어스에 합병됐지만, 시어스 또한 2018년 문을 닫았다. 월든북스는 2011년, 샘 구디는 2006년 파산했다. 한때 미국 곳곳에 매장을 운영했던 대표적 기업들이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사진전은 단지 누군가에게 소중한 추억일 수 있는 한 쇼핑몰의 마지막을 기념하는데 끝나지 않는다. 이 안에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 도태의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때 미국 문화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졌던 쇼핑몰은 수십 년 간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충격으로 소비문화의 혁신이 가속화하며 현지에서는 '미국 쇼핑몰의 시대는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코어사이트리서치는 앞서 미국 내 쇼핑몰 1000여곳 중 25%가 3~5년 내 폐쇄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아마존과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며 가져온 변화의 바람 탓이 크다. 대대적인 할인쿠폰 마케팅으로 미국 대표 가정용품소매업체로 손꼽혔던 베드배스앤드비욘드가 파산 위기에 내몰려 대규모 매장 폐쇄에 나선 것 역시 시장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기업들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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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구글, 아마존 등 선도기업의 전략을 주시해온 디지털전문가 로버트 터섹은 이처럼 디지털 및 소프트웨어 혁명이 몰고 온 변화를 '증발(Vaporized)'로 묘사했다. 전통적인 산업 경제는 이제 언제든 갑자기 '훅' 사라질 수 있는 증발 위기에 서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변화들도 결국 이 증발의 일환이다. 다음은 무엇이 증발할 것인가. 웨인힐스몰 월든북스 매장의 종이낙서처럼 변화하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조차 없는 시대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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