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옮기는 女임원들, 이들은 왜 유연성을 바라나[찐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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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우리는 '대이별(Great Breakup)'의 한가운데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한창이던 지난해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여성 임원들이 잇따라 몸담고 있던 회사를 떠났습니다. 이사 이상 직급인 여성 임원들의 자발적인 이직률은 지난해 10%를 넘기며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남성 임원들의 이직률과의 격차도 1%포인트를 넘기며 최대로 벌어졌어요. 여성 임원들은 다들 어디로 간 걸까요?

한 회사 부사장을 맡고 있는 여성은 "내 직장생활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이 더 관대한 재택근무 정책을 제공하는 회사로 떠나는 상황을 목격했다. 그들은 모두 여성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확산으로 근무 형태 실험을 경험한 여성 임원들이 유연성을 더 보장해주는 회사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매킨지와 셰릴 샌드버그 전 메타플랫폼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설립한 비영리단체 린인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발표한 '직장 내 여성 2022' 보고서 내용인데요. 미국과 캐나다 내 330여개의 기업 내 1200만명의 임·직원의 정보를 분석하고 4만명 이상의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러한 현상이 포착된 겁니다. 고위 경영진 4명 중 1명 정도인 여성 임원들은 왜 회사를 옮기는 걸까요?

◆ 女 임원들 "나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회사로 간다"

매킨지와 린인이 분석한 여성 임원들의 이직 이유는 세가지입니다. 우선 기존 회사에서 남직원들과 비교해 여직원들이 승진의 기회를 덜 보장받는다는 것이 첫 번째고요. 또 여성들이 같은 직급의 남성 임원들과 비교해 회사에서 직원 복지나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Diversity, Equity, Inclusion·DEI)'와 관련한 추가 업무를 하며 과로하는 데도 이를 인정받지 못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아직까지 직장 내 성평등이 완전히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좀 더 자신의 성과와 능력을 알아주는 곳을 찾아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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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마지막으로 언급된 이유가 바로 직장 문화의 '유연성'입니다. 유연성은 팬데믹 기간 중 업무 형태 변화의 특징을 담고 있는 핵심 단어죠.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임원들은 설문조사에서 회사 이직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고민하는 요소 3가지를 묻자 49%가 그중 하나로 유연성을 꼽았다고 해요. 같은 질문에 남성 임원들은 34% 만이 유연성을 언급해 남녀 차가 극명하게 드러났죠.

남녀의 이러한 견해차는 직급과 상관없이 나타났는데요. 전 직급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근무 형태 선호도를 묻는 말에 재택근무를 선택한 비중이 여성은 61%, 남성은 50%로 차이를 보였어요.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답변은 여성 10%, 남성 18%였습니다. 보고서는 "여성들이 재택근무할 때 최소 일부 시간은 미묘한 차별을 덜 겪게 되고 심리적 안정감도 더 높은 수준으로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래이첼 토마스 린인 최고경영자(CEO)는 "여성들은 일과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문화와 기회, 유연성을 제공하지 않는 기업과 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 팬데믹에 집안일·육아 시달린 女…임원도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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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임원들이 유연성을 바라는 이유를 들여다보려면 이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해야겠죠. 바로 집안일과 양육 문제를 이해해야 합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집안일과 양육을 더 많이 한다는 건 이미 여러 통계로 확인된 사실이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국가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OECD 회원국 평균으로 보면 여성은 하루 4시간 이상, 남성은 2시간 정도로 두 배 정도 격차가 납니다.


이러한 추세가 팬데믹 이후 더욱 심해졌다는 분석 결과들이 나오고 있어요. OECD는 지난해 12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여성의 유급 노동시간과 고용률을 남성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트리면서 성의 불평등을 심화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육아를 비롯한 무급 노동 측면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큰 타격이 있었고 12세 미만 자녀가 있는 워킹맘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일도 더러 있었다고 했어요. 이를 두고 '여성(She)', '엄마(mom)'와 경기침체를 의미하는 단어 '리세션(Recession)'을 합쳐 '쉬세션(Shecession)' 또는 '맘세션(Momcession)'이라는 단어까지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 임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남성 임원들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났어요. 매킨지와 린인의 설문조사에서 '집안일과 양육을 대부분 맡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신입사원의 경우 남성 30%, 여성 58%로 28%포인트의 격차를 보였는데요. 직급이 고위 관리자급으로 올라가면 남성은 13%, 여성은 52%로 그 격차가 39%포인트까지 확대됐습니다. 남성 직장인의 경우 직급이 올라갈수록 집안일을 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 줄어든 반면 여성 직장인은 직급에 따른 차이가 거의 없었던 겁니다.

'집안일과 육아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고 답한 직급별 남녀 직장인 답변 비율(자료=매킨지·린인 보고서)

'집안일과 육아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고 답한 직급별 남녀 직장인 답변 비율(자료=매킨지·린인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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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유연성이 여성 직장인들의 불평등한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재택근무를 하면 집에서 업무를 보면서 동시에 집안일과 육아도 더 많이 해 스트레스가 더 쌓이고 업무 생산성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겠죠. 또 팬데믹 종료 후 경영진들이 사무실 복귀를 바라는 상황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승진이나 성과 평가 측면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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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여성 리더뿐 아니라 다음 세대 여성 리더를 잃을 위험도 있다" 매킨지와 린인은 이렇게 경고했는데요. 팬데믹이 촉발한 근무 형태의 실험 과정에서 기업들이 성평등이라는 가치를 우선순위에 올려둬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별과 무관하게 인재를 확보하고 이들이 회사에 잘 적응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겠죠. 현실적인 맥락을 이해하면서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을 갖추는 업무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찐비트]는 ‘정현진의 비즈니스트렌드’이자 ‘진짜 비즈니스트렌드’의 줄임말입니다. 팬데믹 이후 조직문화, 인사제도와 같은 '일(Work)'의 변화 트렌드를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외신과 해외 주요 기관들의 분석 등을 토대로 신선하고 차별화된 정보와 시각을 전달하겠습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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