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 정치와 행정에 상상력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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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연예인보다 더 이름이 많이 알려진 웹툰 작가 ‘기안84’가 개인전을 연다. 웹툰 작업을 미술관으로 옮겨놓은 전시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번 전시회는 팝아트 미술가로서 그의 회화 작품을 전시하는 개인전이다. 팝아트의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기안84는 팝아트에 최적화된 작가이긴 하다. 아직 전시가 시작되지는 않았는데 포스터를 보니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의 유명한 그림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time)’을 패러디한 작품. 엿처럼 녹아버린 시계의 브랜드를 롤렉스로 바꾸고 그 옆에 자신의 웹툰 캐릭터를 그려 넣은 센스가 돋보이고, 동시에 얼마 전에 다녀온 ‘살바도르 달리’의 전시회가 떠올랐다.


먼저 말해두자면, ‘기억의 지속’은 우리나라에 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달리 전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오랜 준비 기간 동안 기대보다 많은 작품들을 확보했다. 미술관에 자주 가는 독자들은 알 텐데, 인쇄물이나 모니터로 보는 것과 원화의 질감을 바로 앞에서 보는 건 감상의 차원이 다르다. 음식을 냄새만 맡는 것과 직접 먹어보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예술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상상력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면 달리만한 예술가를 찾기도 힘들다. 팝아트,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등등 최근 백년간 예술계에서는 과감한 파괴와 새로운 창조가 끊임없이 시도되었는데, 한 세기 전에 그려진 달리의 기괴한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원조’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상상력은 예술에서만 필요할까? 그럴 리가. 가장 상상력과 상관없어 보이는 정치와 행정 분야야말로 상상력이 꼭 필요하다. 상상력의 근대적인 정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일 텐데, 현대적인 정의는 달라졌다고 본다. 필자는 목동에 있는 어느 미술학원(그림을 배워보겠다고 마흔 넘어서 잠깐 다녀본) 교실에 붙어있는 글에서 이 시대의 상상력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낡은 액자에 담긴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상상력이란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눈앞의 목표에만 집착하는 접근법으로는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상대할 수 없다. 그 동안 우리가 목격했던 수많은 정책 실패들이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 공공주도의 주택공급을 강변했으나 사실 가장 썩어 있었던 곳은 공공(LH)였던 맥 빠지는 아이러니, 정전협정이라는 목표에 휘둘렸던 대북정책,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이러려고 했나 싶은 검찰개혁 등등 이번 정부에서 쏟아냈던 정책들이 사악한 의도로 시작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이번 정부의 선한 의도만큼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선한 의도로 시행한 정책도 실패하면 사악한 고통으로 귀결된다. 가장 큰 고통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새 정부에서는 부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고집했던 관념에서 벗어나 달리의 그림과도 같은 신선한 연금개혁안, 기안84의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입시전형 등등을 그려보시길.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툭툭 연결해보면서 말이다. 나부터 그래야겠다. 뭔가 새로운 소설, 전에 없었던 방송, 즐겁게 떠올려봐야겠다.


아직 달리 전시회는 열리고 있다. 그 전시가 끝나자마자 며칠 후에 기안84의 전시가 시작된다. 봄, 상상력을 일깨우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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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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