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완전한 민주국가와 쓰레기봉투
우여곡절 끝에 20대 대통령선거가 마무리됐다. 사전투표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최종 투표률도 80%에 육박해 국민적 관심도 뜨거웠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민주주의 척도는 그 나라의 선거 문화에 비례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2년 대선을 치룬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는 어느 정도일까. 때마침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산하 연구기관(EIU)이 매년 세계 160여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가 최근 공개됐다. 선거 절차와 다원주의, 정부기능, 정치참여, 정치문화, 시민자유 등 5개 분야를 평가해 이를 점수로 산출하고, 그 점수에 따라 각 국가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10점 만점에 8점 이상은 ‘완전한 민주국가’, 6∼8점은 ‘결함있는 민주국가’, 4∼6점 ‘혼합형 정권’, 4점 미만은 ‘권위주의 체제’로.
이번 조사를 보면, ‘완전한 민주국가’는 167개국 중 21개국, 인구 비율로 따지면 6.4%에 불과하다. 1위를 차지한 노르웨이(9.75점)를 비롯해 뉴질랜드(9.37점), 핀란드(9.27점) 등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반면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0.32점),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선 미얀마(1.02점) 등은 최하위권이었다. 우리나라는 8.16점으로 16위였다. 조사 대상국의 평균이 5.28점인 것을 감안하면 꽤 높은 수치다. 일본(8.15점)이 우리 바로 밑인 17위, 민주주의 모범국가로 꼽히는 미국(7.85점)은 이보다 낮은 26위에 그쳤다. ‘완전한 민주국가’로 평가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질만 하다.
그러나 이번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부정 투표 시비는 유권자들의 자긍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4,5일 이틀간 진행된 사전투표땐 확진·격리자들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하고 선거사무원들이 투표용지를 따로 수거하면서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투표용지를 담는 용기는 택배상자나 쇼핑백, 플라스틱 바구니 등 투표소마다 제각각이었다. 심지어 쓰레기 봉투까지 동원됐다. 덮개가 없어 용지를 흘리거나 이미 후보를 찍은 기표용지가 다른 유권자에게 다시 배부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연출됐다. 통일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벌어진 촌극이자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일부 투표소에선 CCTV가 가려진 곳에 투표함을 보관해 부정선거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9일 본투표에선 사전투표를 이미 마친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또 다시 발급받아 투표를 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출범한 지 62년, 투표 체계 만큼은 세계 최고라 자부하던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힘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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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는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설치된 독립 헌법기관이다. 선관위원장이 5부 요인의 지위를 보장받는 것 또한 선거 관리가 그만큼 중요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선관위가 책임을 방기하면서 국민들에게는 불신과 분열을, 정치권엔 선거불복의 빌미를 제공했다. 대선이 모두 마무리됐으니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국민의 기본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권을 지키고, 공정하고 안정적 선거관리라는 믿음과 기대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완전한 민주국가’로 평가 받는 나라와 국민에게 먹칠을 했으니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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