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환상의 마로나'

[이종길의 영화읽기]아, 견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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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이 본 인간세계…그래도 희망은 있다


강아지가 차도에서 자동차에 치인다. 도로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표시되는 마크. 자동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친다. 자국이 희미해질 즈음 혼잣말이 들려온다. '여기는 영점의 영점이다. 무가 되는 순간. 아스팔트 위의 얼룩. 이름도 없고,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한 소녀가 차도로 뛰어들어 이름과 과거를 상기시킨다. "마로나! (자동차를 향해) 멈춰요! 도와주세요!" 소녀는 도로 한복판에서 마로나의 흔적을 지킨다. 마주하고 누워 흔적을 어루만진다. 다시 독백이 이어진다. '다들 괜찮다면 내 인생의 영화를 돌려 보려고 한다. 죽을 때는 그런다고 들었다. 인생이 영화처럼 스쳐 간다고.'


영화 '환상의 마로나'는 마로나의 견생을 돌아보는 애니메이션이다. 반려견의 눈으로 인간세계를 들여다본다. 마로나는 아홉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어미는 아장아장 걷는 자식에게 한 가지 당부를 한다. "인간은 우리 말을 알 필요가 없지만, 우리는 인간의 말을 이해해야 해. 자신을 지키려면 인간의 말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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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나는 세 명의 주인을 만난다. 곡예사 마놀과 건설업자 이스트반, 귀여운 소녀 솔랑주. 안카 다미안 감독은 각각의 동거를 다르게 표현한다. 마놀의 몸에서는 빨간 곡선이 뻗어 나온다. 낭만을 좇듯 부드럽게 춤추다가도 술에 취해 우울해지면 복잡하게 꼬여버린다. 이스트반의 공간은 일직선과 딱딱한 물질로 가득하다. 한결 편안해 보이지만 마로나마저 하나의 물질로 나타난다. 솔랑주의 주위는 노랗게 물들었다. 천진난만한 동심과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진다. 그러나 솔랑주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조금씩 혼탁해진다.


반려동물이 다양한 인간들을 만나 겪는 아픔은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당나귀 발타자르(1966)'에서도 잘 드러난다. 발타자르는 마리(안 비아젬스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지만 그녀의 집안이 기울면서 고난과 수모를 겪는다. 매질을 당하며 볏짚을 나르고 곡예를 부리고 쟁기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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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여정은 마리와 그의 아버지 아놀드(장 클로드 길버트)가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빼닮았다. 착하고 순수한 마리는 악행을 일삼는 제라르(프랑수아 라파르주)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 성실하고 도덕적인 아놀드는 끝까지 순결한 성품을 고수하다 가족조차 지키지 못한다. 그들의 마지막 재산인 발타자르 또한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제라르의 악행에 이용되다 총을 맞는다. 발타자르는 아픔을 참고 언덕 위로 오른다. 그리고 양들에게 둘러싸인 채 조용히 눈을 감는다.


브레송 감독이 발타자르의 눈을 빌린 건 동물의 눈이 가장 순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채찍을 맞으면서도 덤덤하게 관조하는 시선에서 복잡하고 착란한 인간세계가 여실히 나타난다고 봤다.


그로 인해 숨을 거두는 과정은 예수의 구원처럼 다가온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죄를 짓는다. 가장 순수했던 마리마저 타락한다. 발타자르는 악에 물든 세상을 대신해 희생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자들을 양, 사제를 양치기에 비유한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복음 10장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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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마로나'는 '당나귀 발타자르'와 달리 자기 성찰의 성격이 짙다. 내레이션의 역할도 크지만, 등장인물 대부분이 선하다. 마로나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고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런 온기 속에서도 분열의 양상은 계속 나타난다. 그의 어미가 조언했듯 강아지만 인간의 말을 이해하려 드는 까닭이다.


마로나는 원초적인 행복의 기준부터 인간과 다르다. 마로나는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안주하기를 바란다. 반면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갖지 못하는 것을 원하며, 그것을 꿈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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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안 감독은 화려한 그림과 디자인으로 강아지의 감정을 전하며 타인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을 설파한다. 결론은 비극처럼 보이지만 충분히 희망적이다. 솔랑주가 마로나를 마주하고 있으므로.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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