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요즘 사람들은 '열정페이'를 싫어합니다. 타인에 의해 강요되는, 노동의 댓가로 받아야 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시장의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폭력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취업 현실을 가리키는 신조어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명사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열정을 빌미로 무급이나 최저시급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지불하는 노동력 착취가 바로 '열정페이'입니다. 이런 폭력적인 열정페이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국회가 나서서 '열정페이 금지법'을 만들고 있을까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수원을)은 기능이나 경험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실습생, 수련생 등을 보호하고, 사용사가 이를 불법적으로 근로자로 활용하는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열정페이 금지법')을 발의했습니다.
열정페이 논란이 한창이던 2016년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일 경험 수련생 가이드라인'으로는 사용자들의 폭력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법적 근거와 판단기준이 모호하고, 규정을 위반한 사용자에 대한 처벌도 너무 약하다는 지적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사용자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열정페이를 강요 당하는 현장은 방송현장의 스테프들입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됐지만 방송현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표준근로계약서 미체결, 임금체불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합니다.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한 때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열정페이를 지급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열정페이'란 이름의 폭력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인용]
원본보기 아이콘방송현장 노동자들은 "그래도 이전보단 나아졌다"면서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하소연합니다. 최근에는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스태프가 표준근로시간을 지키지 않고 장시간 촬영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공중보건의들의 열정페이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중보건의들은 공중보건의사(이하 공보의) 기간이 군복무 기간입니다. 최근 논산훈련소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한 달의 기간이 군복무기간에 산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공중보건의들은 도서산간지역이나 교정시설, 섬마을 등 의료취약지에서 의료의 빈틈을 메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훈련받는 한 달은 타 보충역과 달리 복무기간에 산입되지 않아 훈련병으로서의 월급도 받지 못한다"면서 "국가에서 모든 공중보건의사를 상대로 군사훈련에 대한 대가로 열정페이를 지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국가대표조차 열정페이를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e스포츠 대회인 '2019 오버워치 월드컵'에 참가한 대한민국 국가대표들이 겪은 일입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3년 연속 우승을 노렸지만, 성적은 3위에 그쳤다고 합니다.
경기 후 선수들이 경기가 아닌 경기장 밖의 처우에 대해 불만을 쏟아 내면서 왜 성적이 나쁠 수밖에 없었는지를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대회가 열리기 며칠 전부터 선수들은 현지에 도착했지만 연습실을 제공받지 못해 성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컴퓨터로 개별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지원받은 것은 왕복 비행기표와 호텔비 외 나머지 비용은 선수와 코치가 개인 비용으로 지불해야 했고, 대회 후에는 단 한 푼의 상금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e스포츠 국가대표는 국가대표가 아니었던 것일까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열정페이의 현장입니다.
가슴아픈 열정페이의 사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을 빛낸 사람들'로 선정했던 전도 유망한 젊은 과학자가 월급 200여만원의 박봉에 시달리다 끝내 과학자의 길을 포기했다는 기사가 최근 보도 됐습니다.
30대 후반의 가장으로서 자녀를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월급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초과학 분야 학회 모임인 기초연구연합회에 따르면, 한 해 이공계에서 배출하는 박사는 4100여명인데 이 가운데 1200여명이 국외로 나간다고 합니다.
열정페이를 받는 과학자에게 노벨상을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아니, 과학자가 열정페이를 받는 나라에서 노벨상을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요?
백 의원은 "청년층이 사회에 첫 발도 딛기 전에 불법과 편법으로 노동착취를 당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하다"면서 "사용자들의 자정노력과 정부의 철저한 근로감독을 통해 열정 페이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법안안 개정돼 시행되면 좀 나아질까요? 바라건데, 의원들도 보좌진의 열정페이를 없애주길 기대합니다.
열정페이는 청년층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100만 원을 주면서 200만 원어치의 일을 시켜서도 안되지만, 100만 원을 받으면서 알아서 200만 원어치의 일을 해주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열정페이를 주는 쪽만이 아니라 받는 쪽도 문제라는 의미입니다.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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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 즉 '폭행'입니다. 당신은 일방적으로 폭행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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