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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서울광장 '노란색 물결', 盧 떠나보낸 50만 추모인파

최종수정 2019.05.25 09:00 기사입력 2019.05.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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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29일 서울광장 노제에 몰린 시민들…침통한 분위기 영결식장, 장내 술렁이게 한 외침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인 23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고인의 추모비를 스마트폰에 담고 있다. 오는 25일 밤 10시까지 운영되는 분향소 주변에서는 4대 종단의 추모행사와 합동 위령제, 각종 추모 공연 등이 개최된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인 23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시민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고인의 추모비를 스마트폰에 담고 있다. 오는 25일 밤 10시까지 운영되는 분향소 주변에서는 4대 종단의 추모행사와 합동 위령제, 각종 추모 공연 등이 개최된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이명박 대통령 사죄하시오. 어디서 분향을 해.” 2009년 5월29일 서울 경복궁 앞뜰. 백원우 당시 민주당 의원의 외침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은 긴장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고 청와대 경호원들은 백 의원의 입을 틀어막았다. “살인자”라고 울부짖는 목소리가 뒤섞였지만, 영결식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백 의원은 영결식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보복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은 분노와 슬픔이 어우러진 자리였다. 백 의원 사건은 노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였다. 이날 영결식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채 진행됐지만 시종일관 침통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헌화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 유족에게 위로를 전하자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영결식장 주변으로 경찰이 겹겹이 에워 쌓다. 일반인들은 서울광장에서 진행되는 노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경찰추산 18만명, 주최측 추산 50만명.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자 서울광장에 나선 인파들은 ‘노란색 물결’을 이뤘다. 가로 1.1m, 세로 1.4m 크기의 영정을 앞세운 운구 행렬 서울광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은 눈물로 얼굴을 붉혔다.


가수 양희은, 안치환, 윤도현의 추모공연과 조시 낭독, 유서 낭독 등이 이어진 후 노제는 마무리됐다. 노제가 끝난 이후 서울역을 향하는 운구행렬 뒤로 2000여개의 만장(輓章)이 뒤를 따랐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인 23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시민분향소를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오는 25일 밤 10시까지 운영되는 분향소 주변에서는 4대 종단의 추모행사와 합동 위령제, 각종 추모 공연 등이 개최된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인 23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시민분향소를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오는 25일 밤 10시까지 운영되는 분향소 주변에서는 4대 종단의 추모행사와 합동 위령제, 각종 추모 공연 등이 개최된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너무 많은 시민이 참여한 관계로 발걸음은 더뎠다. “이대로 보내드릴 수 없다”면서 운구차 앞에 드러눕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역을 지나 용산 쪽으로 운구차가 빠져나갈 때까지 경찰 추산 3만5000명의 추모객들이 차량 행렬의 뒤를 따랐다.


용산 고가도로 앞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시민들이 앞길을 터주면서 운구차는 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운구 행렬이 지나간 도로의 주변 빌딩에서는 노란색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시민들도 보였다.


29일 오후 6시 수원 연화장에 도착한 뒤 고인의 유언대로 화장이 진행됐다. 화장을 지켜보려는 인파는 경찰 추산 8000여명에 달했다.


유골함은 봉하마을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사저 인근에 안장됐다.


노 전 대통령 노제가 진행된 서울광장은 밤늦게까지 1만여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지켰다. 영결식과 노제가 끝난 이후 서울광장 주변 풍경은 다시 긴장이 감돌았다. 경찰은 다음날 새벽 서울광장을 버스로 둘러쌌다. 서울광장 봉쇄 과정에서 연행자도 발생했다.


22일 경북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참배객들이 마을 안내도를 보고 있다.(사진=원다라 기자)

22일 경북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참배객들이 마을 안내도를 보고 있다.(사진=원다라 기자)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고인께서는 평생을 민주화와 국가발전에 헌신했다”면서 “이제 남겨진 우리는 고인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하나로 화합하고 국가발전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화합의 메시지가 녹아들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됐던 노 전 대통령 시민 분향소는 경찰에 의해 철거됐다. 시민 분향소 주최 측은 “경찰이 망가뜨린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면서 부서진 천막과 조화를 그대로 둔 채 시민 분향을 이어갔다.


2009년 5월 이명박 정부 시대의 서울 도심 풍경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뇌물·횡령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을 기다리고 있다.


2019년 5월 봉하마을은 노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아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노무현재단은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침통함의 시간을 끝내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뜻이 담겼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그동안 재단이 애도와 추대에 중심을 두고, 위로에 방점을 찍고 많은 활동을 해왔지만, 10주기를 맞아 애도를 마치고 작별을 해야 할 시기”라고 설명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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