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北대사관 침입 사건 배후에 美CIA…괴한 일부 연관"(종합)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지난달 일어난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강도 사건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개입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CIA 측은 즉각 이를 부인했지만 스페인 정부는 개입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어 양국 간 외교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북ㆍ미 핵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제기된다.

스페인 유력 일간지 엘파이스는 13일(현지시간) 스페인 경찰과 국가정보국(CNI)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달 북한 대사관에 침입한 괴한 10명 중 2명의 신원을 CCTV를 통해 확인했으며 이들이 CIA와 연관돼 있다고 전했다. 매체는 괴한 대부분이 '한국인(coreanos)'이었으나 최소 2명은 스페인 정보 당국이 CIA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면서, 한국이 연루됐을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엘파이스는 스페인 당국의 해명 요구에 CIA는 의혹을 부인했지만 스페인 정부가 이 답변을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페인 당국은 이 사건이 단순 강도일 가능성은 배제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엘파이스는 수사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사건이 "군사 조직에 의해 행해진 것처럼 완벽하게 사전에 기획됐다"고 전했다.

지난달 22일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주스페인 북한 대사관에서 괴한들이 침입해 공관 직원들을 결박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강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베트남 하노이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을 닷새 앞두고 발생한 이 사건은 정상회담 첫날인 스페인 인터넷 신문 '엘콘피덴시알'에서 처음 보도됐다. 엘콘피덴시알은 보도 당시 "괴한 중에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언급했다.

주스페인 북한 대사관은 북ㆍ미 핵 협상에서 실무를 맡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가 2017년 9월까지 대사로 재직한 공관이다. 스페인 정부는 당시 북한의 핵실험 도발에 대한 항의로 김 대사를 추방했다. 이 같은 사실 때문에 엘파이스는 괴한들이 김 특별대표에 관한 정보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엘파이스는 이번 사건이 스페인과 미국 사이에 외교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동맹국을 상대로 미국이 이러한 행위를 했다는 점을 '용인할 수 없다'라는 게 스페인 정부 소식통의 반응이라는 것이다. 엘파이스는 "만약 CIA가 이 사건의 배후라면 스페인 정부로부터 사전에 허가를 받거나 관련 내용을 고지하지 않은 상태로 이러한 작전을 펼쳤을 뿐 아니라 미국이 외교 사절단을 보호하는 국제 규약을 깼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CIA 개입 사실이 확인될 경우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북ㆍ미 핵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됐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