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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영화]할리우드판 '왕가네 식구들'…'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최종수정 2014.04.06 11:00 기사입력 2014.04.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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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 줄리아 로버츠, 이완 맥그리거,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주연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인생은 매우 길다." 별로 특이하지도, 인상적인 말도 아니지만 T.S. 엘리엇이 말했다고 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늘 과묵했던 아버지 '베벌리'가 사라졌다. 실종되기 며칠 전 갑작스레 '인디언 가정부'를 집에 데리고 온 일이 특이사항이라면 특이사항이다. 약물 중독인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건 늘 일상적으로 있던 일이었다. 참, 아버지는 엘리엇의 말을 인용해 '인생은 매우 길다'라고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제각각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미국 오클라호마 주의 오세이지 카운티의 집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때는 푹푹 찌는 찜통 더위의 8월이었다. 큰 딸네 식구들, 막내딸과 그의 약혼녀가 찾아오고, 엄마의 동생인 이모네 식구들도 차례로 도착한다. 장례식을 치르고 이들 가족들은 가까스로,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한 자리에서 저녁을 먹는다.

메릴 스트립과 줄리아 로버츠

메릴 스트립과 줄리아 로버츠


보통의 가족드라마는 이런 자리에서 남겨진 식구들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애도하거나, 아버지와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하나씩 털어놓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다르다. 이미 너무 다른 방식으로 자기만의 삶을 살기 시작한 이들에게 '가족'이란 허울뿐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이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서로에게 독설을 던지고, 상처를 남긴다.

우선 어머니와 세 딸은 다른 듯 닮았다. 이들이 저마다 안고 있는 사연은 가관이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엄마 '바이올렛'은 구강암 환자에다 약물중독자다. 여기에 아버지의 자살까지 겹쳐 신경이 잔뜩 예민해져 있다. 큰 딸에게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렸다"며 비난하고, 둘째 딸에게는 "꾸미지 않고 다녀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웃는다. 다 같이 먹는 저녁 자리에서는 "아버지의 재산은 모두 내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접대용 가발을 썼다 벗었다 하는 이 신경쇠약 직전의 독설가는 가족 문제의 한중간에 있다.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큰 딸 '바바라(줄리아 로버츠)'는 젊은 여자와 눈 맞은 남편(이완 맥그리거)과 별거에 들어갔다. 중2병에 걸린 14살 딸은 매사에 시큰둥하다. 어머니의 집 근처에 사는 둘째 딸 '아이비(줄리엔 니콜슨)'는 가족들 몰래 사촌 '리틀 찰스(베네딕스 컴버배치)'와 사귀며, 곧 집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 셋째 딸 '캐런(줄리엣 루이스)'은 여러 번의 결혼 실패 끝에 새 약혼남 '스티브'를 데리고 장례식장에 나타난다. 하지만 호색한인 스티브는 바바라의 14살 딸에게 집적거린다. 이쯤되면 막장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영화는 속사포같은 대사를 통해 이 가족들의 숨겨진 역사를 들춰낸다. '바바라'는 끝내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음을 예감하고, 세 딸들은 홀로 남겨진 엄마의 부양 문제를 논하다가 말다툼한다. 늘 뭔가가 어설픈 '리틀 찰스'를 두고 그의 부모들 역시 의견 충돌을 빚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반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도저히 봉합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이 가족들은 결국 하나둘 서로의 곁을 떠난다. 역시 '가장 큰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메릴 스트립, 줄리아 로버츠, 이완 맥그리거, 베네딕트 컴버배치, 크리스 쿠퍼 등의 배우들을 한 가족으로 엮은 초현실적인 캐스팅이 인상적이지만, 관객들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엄마의 독설과 무례함에 발끈한 큰 딸 '바바라(줄리아 로버츠)'가 엄마(메릴 스트립)와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이 압권이다. 그토록 참을 수 없었던 엄마의 유전자를 자신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씁쓸한 장면이기도 하다. 최근의 대세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다소 모자라고도 맹한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더 컴퍼니맨'을 연출했던 존 웰스가 감독으로 나섰고, 조지 클루니가 제작을 맡았다. 영화는 세계적인 작가 트레이시 레츠의 희곡 '어거스트: 오세이지 카운티'를 원작으로 한다. 이 작품은 탄탄한 구성과 위트 넘치는 대사와 메시지로 토니상 최고 연기상을 포함해 5개 부문상과 퓰리처상, 뉴욕비평가상, 드라마데스크어워드 3개 부문을 휩쓸었다. 희곡이 원작이라 그런지, 촌철살인의 대사들이 이따금씩 우리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뜨끔하기도 한 작품이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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