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혼자이고 싶을 땐 '후드'를 입는다
패션 아이템의 본질 <2> 후디 이야기
[패션컨설턴트 김선아]"'옷'은 감정을 은유한다."
데이트 때 살랑이는 시폰 드레스를 입고 나가는 여자 마음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 것이고, 신선한 블루컬러의 셔츠는 결심을 새로 한 날을 기념하기에 제격이다.
그럼, 영화
굳이 나만의 세계를 부르짖는 힙합 뮤지션이 아니더라도 유독 혼자만의 감정을 보호받고 싶은 날이 있다. 나는 그런 날이면 집업 후드티를 입는다. 명색이 후드티인 만큼 후드의 사이즈는 좀 큰 편이 좋다. 그저 디자인으로 달려있는 아기 머리둘레 사이즈의 후드는 곤란하다. 동네 카페에서 딸기맛, 키위맛, 바나나 맛 스무디의 견본컵 속에 색색깔 종이를 구겨 넣어둔 것처럼 왠지 서글픈 흉내 같으니까.
후드티인 만큼 후드는 머리에 뒤집어쓰는 편이 좋다. 목에서 어깨까지 잘 흐트러져서 가만히 있는 쪽도 나쁘진 않지만, 후드티가 아이템으로써의 아우라를 펼치는 순간이 바로 이때니까.
적당하게 여유 있는 후드를 뒤집어쓰면 시야각이 좁아진다. 물론 원하는 바의 불편함이다. 길을 걸을 땐 이어폰을 꽂아 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집중한다. 집중이 안 되고 신경이 예민해질 때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일을 하면 능률이 오르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독서실의 칸막이 1인 책상을 연상하면 쉬울까. 어떤 의식처럼 거창하진 않지만 사소한 스타일링만으로도 일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정말 좋아하는 그레이 컬러의 집업 후드티가 하나 있다. 코튼 100%. 기모처리가 돼있어서 톡톡한 소재감에선 갓 세탁한 수건에 얼굴을 파묻는 그런 포근한 정서가 느껴진다. 몇 년을 입어온 탓에 포켓 주변에 구멍이 생겼는데도 이 후드티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유독 마음이 여려지는 날엔 이 후드티를 입는다. 후드를 뒤집어쓴다. 길을 걷거나 집중해서 일을 한다. 일을 할 때 뒤에서 누가 부를 때 잠시, 한 템포 여유를 두고 대답한다. 후드로 막은 귀가 먹을 리 만무한데 혼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안내가 되긴 하는지 부르는 쪽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대답을 기다린다.
살면서, 처음으로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을 선사했던 첫사랑의 남자는 블랙 후드티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 쓴 채 지금은 사라진 강남역 타워레코드에서 서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였으며, 첫 눈에 사람에게 반한 순간이었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뒤에서 지나가는 수많은 인파는 Blur처리가 되는 기현상을 체험한 유일무이한 순간이었던지라 더욱 첫사랑다운 남자였다.
적당하게 여유 있는 사이즈의 후드티를 입고 서있는 그 모습에서 독립된 존재로서의 안정감을 느꼈다. 아집으로 물들어진 자기세계가 아닌, 존중해줘야 마땅할 견고한 그만의 세계가 느껴졌다. 그런 탓에 지금도 후드티를 잘 입은 남자를 보면 가슴 한 켠이 아련해지면서 한 번 더 눈을 돌리게 된다.
한 사람의 존재감을 발현하는 게 조금 억지스럽다면 감정을 은유하는 역할만으로도 후드티는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에서 소음에 신경이 분산된다. 맥북과 연결할 이어폰을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은 탓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만의 시야각을 선사하는 후드티를 입고 올 걸 그랬다. 눈과 귀는 연결돼 있는지, 이 소음을 조금이나마 잠재우고 이 칼럼에 100%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문득 오늘 아침, 방문에 툭 걸어두고 나온 내 그레이 후드티가 그립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