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로 금융업은 실패한 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금융업은 자본을 기업과 소비자에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배분해 실물경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누구든 원하는 이들에게 신용을 남발했다. 금융업회사는 장단기 여신을 운용하는 데 고도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발휘, 수익성을 제고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 금융업은 혈관이 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공급하듯 경제 전반에 신용을 공급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지만 실상 칸막이를 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금융시스템의 실패로 인한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뼈아픈 학습효과로 인해 금융업계가 어떻게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조망해 본다.】
고용부터 소비까지 실물경기의 하강이 멈추지 않고 있지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번지고 있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위기의 원흉인 금융업계도 과거의 영광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근거 있는 낙관일까.
과거 대공황과 일본의 장기 침체, 1990년대 스웨덴의 금융위기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씨티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금융권 대출 자산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최고치 대비 미국의 은행권 대출 자산이 반토막이 났고, 일본과 스웨덴 역시 각각 30%, 25% 감소했다. 이 때문에 신용 손실이 재무제표에 온전하게 반영되기 전부터 금융권 수익성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현재 금융권의 영업환경은 당시와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자본 확충을 위한 부채축소와 수요 감소, 자산 가치 하락 등 과거의 전철을 밟고 있다.
◆ 수익성 악화 요인 곳곳 = 시장 자체가 축소되는 동시에 자본 확충 요건이 강화되면서 금융권 이익을 압박할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경기가 곧 바닥을 친다 해도 신용팽창기와 같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수익창출은 어렵다는 얘기다. 금융회사는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키거나 자산 회전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최근 몇 년간 20% 내외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올렸다. 하지만 자산건전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 두 가지 수익원 모두 가동되기 힘들 전망이다.
기관 및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역시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모건스탠리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40% 급감한 헤지펀드 자산은 올해 15~30% 추가로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권 수익에서 3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사모펀드 역시 몸집이 줄어들기는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대출 채권의 증권화에 제동이 걸리면서 부채축소가 과도하게 일어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가계 부채도 금융권 수익성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소비자들이 부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서 신용에 대한 수요가 상당 기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도 우호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저금리로 인해 은행 예대마진이 줄어들고 있다. 기준금리가 제로 수준까지 떨어져 대출 금리를 내려야 하는 반면 예금 금리를 떨어뜨리는 일은 여의치 않기 때문. 월가의 한 전문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본과 같이 제로금리가 장기간 지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승자에게 유리한 게임 = 금융권을 정상화하는 과정에 가장 큰 골칫거리로 지적되는 것이 이른바 대마불사다. 하지만 위기의 터널을 빠져나가면서 승자가 독식하는 비즈니스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바클레이스 캐피털은 이번 위기에서 살아남는 금융회사가 보다 높은 이익률과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실 은행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한편 정부가 은행 신규 허가를 차단, 살아남은 은행이 더 높은 진입장벽 속에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예금 확보와 리스크 관리, 교차판매와 여신 창출 등 모든 사업 부문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달라진 비즈니스 환경으로 인해 덩치가 작은 은행일수록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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