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중순이었다. 이때 만난 정부 고위 관료는 "요즘 국회에 가면 여당과 야당의 수준 차이가 너무 크게 난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느낀다"는 것이었다. 반면 "여당 의원들은 법령과 관련된 질문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아마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질문을 못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관료의 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부의 정책 추진동력이 크지 않은데, 여당 의원들은 정부를 지원사격해 줄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 아니냐는 푸념으로 읽혔다. 여당이 이런 식으로 의정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을 테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거대 야당과의 갈등의 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깊어졌다. 야당은 무리한 법안을 만들어서 일방적으로 본회의를 통과시켰고, 국무위원·검사 등 탄핵안을 29건이나 발의했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이 행사한 거부권은 25회나 된다. 탄핵안과 거부권 모두 역대 가장 많았다. 강 대 강의 구도였다. 정치가 다른 입장의 절충점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이 만든 법안에는 그쪽의 주장만 가득했고, 대통령은 이에 대해 분노를 드러냈다. 타협과 절충은 사라졌다.
이 갈등은 마침내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로 폭발했다. 비상계엄의 핵심 명분은 종북세력 축출과 부정선거 수사였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15일 10시33분 관저에서 체포돼 서울구치소에 구금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체포 시점으로부터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며칠 뒤에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현직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탄핵 심판대에도 섰다.
비상계엄 사태가 윤 대통령과 일부 측근 군인들에 의해 이뤄진 일이라고 하더라도 여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에서 야당과 함께 협의로 풀 일을 무조건 대통령에게만 의존한 것은 아닌가. 여당이 의석수는 적지만 야당에 제시할 협상카드는 없었나. 친윤·친한 계파 갈등에만 매몰돼 의원 본연의 일은 내팽개치지 않았나. 대통령과 맞서는 당 대표를 내쫓는 데만 혈안이 된 것은 아닌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여당이 심각한 매너리즘에 빠진 게 분명하다. ‘웰빙당’이라는 조롱을 받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 ‘윤 대통령 이후 한국 보수당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는 질문에 맞닥뜨린다. 지금 여당은 이 질문에 책임 있게 답할 수 있느냐고 묻고 싶다. 그렇지 못하다면 보수당은 어떤 식으로든 건설적 해체를 해야 한다. 당명만 바꾸는 생색내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보수 가치를 고민하는 외부 인사들까지 흡수해야 한다. 용광로처럼 논쟁을 벌여야 한다.
그렇지만 나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보수라는 큰 틀에는 묶이지만 각론에서 다른 의견이 얼마든 존재한다. 종북세력에 대한 적대감이 강하더라도 비상계엄이 아닌 선거를 통해 이겨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자신 있게 쓰려면 반드시 선거에서 이김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번이 한국 보수당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조영주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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