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동부…화재로 순식간에 마을 전소
먹다 남은 음식 등 고스란히 출토
영국에서 3000년 전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거의 그대로 보존돼 '영국판 폼페이'로 불리는 유적지가 발굴됐다.
2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맥도날드 고고학 연구소 연구진이 잉글랜드 동부 피터버러의 동쪽, 플래그 펜 분지의 후기 청동기 시대 유적지에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유물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머스트 팜(Must Farm)'이라는 이름의 이 유적지에서는 반쯤 먹다 남은 죽, 나무 숟가락, 공용 쓰레기통, 호박·유리 구슬로 만든 목걸이 등 당시 생활상을 알려주는 다양한 물건들이 출토됐다.
WP는 유물이 잘 보존된 상태로 발굴된 이유는 화재가 순식간에 이 마을을 덮쳤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당시 이 마을은 유속이 느린 강 위에 기둥을 세워 만든 목재 원형 주택 여러 채로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마을은 조성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화재가 일어나면서 불길 때문에 주택과 그 안에 있던 내용물이 진흙탕 강으로 무너져 내렸고, 이는 타버린 물체들을 마치 쿠션처럼 받치는 완충작용을 했다. 연구진은 불로 인해 까맣게 탄 것들이 습지를 만나 예외적인 보존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플래그 펜 유적의 발굴 책임자인 마크 나이트는 "영국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 중 최고일 수 있다"며 "매우 포괄적이고 일관성 있는 유적"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유적지가 로마인들이 영국에 오기 8세기 전인 기원전 850년경 세워졌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목조 원형 주택 네 채를 발견했는데, 실제 마을 규모는 두배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로로 연결된 큰 건물에는 최대 60명이 함께 살았던 것으로 추산되며, 각 원형 주택의 넓이는 50㎡ 정도로 그 안에 난로와 단열을 위한 짚, 진흙 지붕이 있었다.
일부 주택에는 현대의 집처럼 조리나 수면, 작업을 위한 활동 공간이 별도로 있었다. 또 금속 도구와 베틀 추, 농작물 수확을 위한 낫, 도끼, 면도칼 등 집마다 비슷한 물건이 나온 것으로 볼 때 각 가정이 별도의 독립된 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물 중에서는 사냥이나 방어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창 더미, 덴마크와 이란 등에서 가져온 구슬로 만든 장식용 목걸이, 고급 아마 섬유로 만든 옷, 사랑하는 가족의 유품으로 보이는 기념품과 성인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도 발견됐다.
이곳에 거주했던 주민들은 야생 돼지, 강꼬치고기(pike)나 도미 등 생선, 밀과 보리 등 다양한 음식을 섭취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만든 사람의 지문이 남아있는 토기와 함께 그 안에 들어있는 나무 주걱, 동물성 지방이 섞인 밀 곡물죽도 발견했다. 이 토기와 항아리에 대한 화학 분석 결과, 사슴 고기 등과 함께 꿀의 흔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연구진 중 한 명인 고고학자 크리스 웨이크필드는 "주민들이 죽 위에 토핑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기즙을 저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람 두개골 외에도 반려동물로 키우거나 사냥에 동원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개의 두개골도 발견됐다. 개의 배설물에서는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물을 먹었던 흔적이 보였다. 실내 공간에서는 양 뼈도 몇 점 나왔는데, 당시 양이 생후 3~6개월 정도 됐던 것으로 미뤄볼 때 화재 시점은 늦여름이나 초가을쯤으로 추정된다. 이번 발견에 대해 잉글랜드의 문화재 관리 담당 공공기관 '히스토릭 잉글랜드'의 던컨 윌슨 소장은 "그 시대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정교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연안에 있던 고대 도시 폼페이도 서기 79년 8월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겨우 18시간 만에 폐허가 됐고, 2~3m 두께의 화산재 등에 덮여 유물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폼페이는 오래도록 잊혔다가 1592년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나오면서 소규모 발굴이 시작됐고 이후 1748년부터 본격 발굴에 들어갔다. 이곳은 규모가 큰 데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지금도 발굴과 복원 프로젝트가 이뤄지고 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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