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부터 42년간 그룹 진두지휘
"생명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
박카스·자이데나 등 대성공
'재계 큰 어른' 꼽혀…각계 조문 이어져
"강신호 박사님, 영면하시옵소서."
4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은 백발의 노신사는 한자씩 눌러 쓴 자필 편지로 강 명예회장에 대한 마음을 전했다. 편지의 주인공은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유 회장은 동아제약 공채 1기 출신으로 상무이사까지 거치며 고인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코리아나화장품을 창업했다. 유 회장은 "1959년 강 명예회장이 독일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해 처음으로 공채를 실시했고, 그때 입사해 공채 1기가 됐다"며 "강신호 회장님의 지혜로 역량 있는 사원을 모집, 교육과 훈련을 통해 기업을 대규모로 확장했다"고 추억했다.
전날 마련된 강 명예회장의 빈소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빈소에는 고인과 생전 인연을 맺었던 경제계 인사들과 지인들이 빈소를 찾았다. 이날 오전에도 윤성태 휴온스그룹 회장과 원희목 전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김철수 전 상공부 장관, 김희용 TYM 회장 등이 찾아 조문했다.
3일 96세의 일기로 타계한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은 제약·바이오 업계를 넘어 한국 경제계를 대표한 경제 원로다. 고인은 1927년 경북 상주에서 고(故) 강중희 동아쏘시오그룹 창업주의 1남 1녀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박사를 거친 뒤 1959년부터 201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약 42년간 현장을 지휘했다.
고인은 ‘생명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의약품 선진화를 통해 국민 건강을 향상하는 데 힘썼다. 1980년 경기도 안양에 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KGMP)에 맞는 현대식 공장을 준공했고, 1985년에는 업계 최초로 GMP 시설을 지정받았다. 1977년 제약업계 최초로 기업부설 연구소를 설립했고, 1988년 경기도 용인에 신약 안전성을 실험할 수 있는 우수 연구소 관리 기준(KGLP) 시설도 마련했다.
고인이 1961년 개발한 박카스는 국내 대표 피로회복제로 자리매김하면서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박카스는 동아제약이 2013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전까지 무려 47년간 국내 제약업계 1위를 지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1990년대 초부터 본격화한 신약 개발 열기는 1991년 최초로 합성한 아드리아마이신 유도체 항암제 ‘DA-125’를 탄생시켰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 4번째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를 포함해 슈퍼 항생제 ‘시벡스트로’, 당뇨병 치료제 ‘슈가논’ 등 국산 신약 탄생을 이끌었다.
고인은 제품개발과 인재 육성, 사회공헌 등에 주력해왔다. 동아제약은 1959년 처음으로 1기 공개채용을 시작했으며, 1980년에는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경기도 용인시에 인재개발원을 건립하고 사원교육을 제도화했다. ‘사회’라는 의미가 담긴 ‘쏘시오(SOCIO)’를 사용해 1994년 동아제약그룹을 동아쏘시오그룹으로 명칭을 바꾼 것도 고인의 의지였다. 1987년 사재를 출연, 수석문화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 평생교육 사업, 교육복지 사업 등을 후원했다.
경제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앞장섰다. 고인은 48년간 제약업계 대표적 원로모임인 팔진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팔진회는 1975년 국내 주요 제약기업 오너 경영인 8인이 제약 산업계 발전을 도우며 ‘여덟 사람이 함께 나아가자’는 뜻을 담아 만든 친목 모임이다. 강 명예회장과 김승호 보령 회장, 고 이종호 JW중외제약 명예회장,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유영식 옛 동신제약 회장, 고 윤영환 대웅제약 회장, 고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 고 허억 삼아제약 회장이 참여했으며 올해 1월 마지막 모임을 갖고 활동을 마감했다.
고인은 제약산업 경영인 최초로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았고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장을 맡아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정부 정책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29·30대 전경련 회장을 역임하면서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한미·한중·한일 재계회의 등 해외 경제인과의 교류 행사를 다수 주재했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회장님의 생명존중과 나눔의 정신, 그리고 늘 청년같이 뜨거웠던 기업가 정신은 우리 경제계의 소중한 유산"이라며 "그 숭고한 뜻을 저희 후배들은 받들어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장례는 동아쏘시오그룹 그룹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아들 강정석·강문석·강우석씨, 딸 강인경·강영록·강윤경씨가 있다. 발인은 오는 5일 6시30분에 진행될 예정이며, 장지는 경북 상주시 이안면 대현리 선산이다.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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