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올라온 현대그룹 명예회장 일대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다룬 게시물에 반응을 남겨 화제다.


16일(현지시간) 머스크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한 해외 누리꾼이 올린 정 명예회장 일대기 관련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다.

머스크도 "좋아요" 누른 정주영 회장의 감동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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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에는 정 명예회장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담겼다. 게시물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현재 북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사범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꿈을 접었다.


정 명예회장은 가난에서 벗어나려 여러 차례 가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이 아버지에게 붙들려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마지막 가출에서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들고 상경해 1931년 '복흥상회'라는 쌀가게에 취직했다. 일한 지 3년여 만에 쌀가게를 인수한 그는 '경일상회'란 간판을 내걸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가게는 1939년 일제가 전시체제령을 내려 쌀 배급제를 실시하면서 문을 닫게 됐다.

정 명예회장은 낙담했으나, 1940년 자동차 정비업체인 '아도서비스'를 인수한다. 그러나 이 또한 1943년 일본이 종로의 일진공작소와 강제 합병시키는 탓에 문을 닫게 됐다.


정주영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이미지출처=아산재단]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이미지출처=아산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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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자동차 수리공장을 다시 시작했는데, 이때 내붙인 이름이 '현대자동차공업사'다. 1947년에는 건설업체인 '현대토건사'를 세워 3년 후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합병했다.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의 탄생이다. 이후 현대건설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정 명예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부호로 떠올랐다.


특히 정 명예회장은 1998년 소 1001마리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는 등 남북 교류사에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당시 소감문을 읽으며 "청운의 꿈을 안고 아버지 소를 판 돈 70원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며 "이번 방북이 단지 한 개인의 고향 방문을 넘어 남북이 같이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전 '무한한 잠재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은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이 무한한 인간의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목표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고 이에 상응한 노력만 쏟아부으면 누구라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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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현대차 잘한다" 호평
[이미지출처=머스크 트위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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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는 경쟁자인 현대차의 경쟁력을 인정하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6월 18일 트위터를 통해 "현대차가 잘하고 있다(Hyundai is doing pretty well)"는 글을 남겼다. 한 트위터 이용자가 미국 1분기 전기차 점유율 순위를 올린 데 대한 답글이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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