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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억원 쏟아부은 북한인권DB…활용은 14%에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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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최근 북한인권보고서 첫 공개발간
인권실태 3412명 조사…508명 증언만 활용
객관성·대표성 결여…"예견된 부실보고서"

정부가 북한인권 조사를 위해 수십억원을 투입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놓고, 최근 공개된 첫 북한인권보고서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 유린의 실상이 국제사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며 북한인권 실태 공개를 촉구했지만, 기초적인 데이터 분석조차 없이 증언만 나열하는 데 그치면서 보고서가 국제사회에서 신뢰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국회에 보고된 북한인권기록센터의 세입세출 자료 등을 종합하면 센터는 2016년 9월 출범 이래 지난해 7월 말까지 최소 79억8000만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이 가운데 '북한인권정보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인권조사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운영하는 데만 33억3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수십억 DB 만들고도…민간보다 미흡한 실태 분석
탈북 청소년들이 꽃제비 시절을 표현한 연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탈북 청소년들이 꽃제비 시절을 표현한 연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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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통일부는 지난달 31일 북한인권법 제정 7년 만에 '북한인권보고서'를 처음으로 공개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탈북민 508명의 증언과 1600여개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하이힐이나 화장품 등 한국 제품을 팔던 북한 주민이 공개 처형된 증언 등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실태가 담겼다.


북한인권기록센터가 구축한 DB에는 2017년부터 조사한 탈북민 총 3412명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인권실태를 다루는 '기초 설문조사'에 응답한 수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는 DB 가운데 인권침해 경험 시점이 2017년 이후인 508명의 증언만 활용했다. 구체적 피해 진술이 담긴 법정기록물인 '문답서'를 작성한 탈북민도 2075명에 달했지만, 각각의 증언에 대한 시기별·지역별·유형별 인권침해 실태에 대한 기초적인 빈도값은 제시하지 못했다.


보고서는 표 하나로 탈북민의 성별과 출신 지역 등을 분석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12월 통일연구원이 발간한 북한인권백서에서 사안별 실태와 현황까지 상세히 정리한 것보다 미흡한 수준이다.

특히 보고서는 장애인 생체실험, 임신부 처형 등 처참한 인권유린 사례를 제시하면서도 비교할 만한 현황이나 근거는 적시하지 못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보고서는 최소한의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권침해 사례마다 근거가 되는 탈북민의 진술을 익명의 각주로 표기했지만, 센터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이유로 증언 주체에 대한 정보를 모두 가렸다.


508명 '피해증언' 나열…"경향성 제시나 분석 없어"
권영세 통일부 장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권영세 통일부 장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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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의 대표성도 결여됐다. 대상자 508명의 출신 지역은 양강도 300명(59.1%), 함경북도 88명(17.3%)으로, 접경 지역에 치우쳤다. DB를 정상 활용했다면 지역별로 '일종의 가중치'를 부여해 편중된 응답을 완화하는 작업이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선거 여론조사 때 지방 응답자가 수도권에 비해 적을 경우 이를 조절해서 제시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특히 피해 증언이 인용된 탈북민은 평양 출신이 55명(10.8%)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보고서는 북한의 국경 봉쇄로 해외파견 노동자의 탈북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해외파견 노동자' 실태는 근로권 분야에 포함시켜 짧게 다루는 데 그쳤다. 전체 보고서 450쪽 분량 중 25쪽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기존에 알려진 실태를 재설명한 수준으로, 제시된 사례는 전체 1600여개 가운데 9개에 불과했다. 해외 탈북자·노동자 실태를 따로 다룬 기존 북한인권 분야 보고서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북한인권법 취지에 맞게 보고서를 활용하려면 어떤 문제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지, 지속적인 문제인지, 일부 지역 혹은 북한 전역에 해당하는 문제인지 경향성을 분석해서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며 "북한인권기록센터가 7년 동안 어떤 문제를 추적했으며, 어떤 인권침해를 중요하게 보는지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DB 활용 못하는 이유…인권실태 조사 부실했나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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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DB를 활용하지 못한 건 설문 문항 자체가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일부는 인권실태 조사 문항에 대해선 비공개해왔으며, 국회의 요구에도 내용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설문 문항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일부 문항의 설정과 관련해 자문단의 반대가 나왔지만, 지난 정부에서 이를 강행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보고서 발간에 관여했던 자문위원 출신 전문가는 "청와대(문재인 정부)에서 대북정책에 활용한다며 조사에 '사회권' 항목을 넣으라고 지시했다"며 "사회권 조사는 오랜 시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문제라 반대했지만, 결국 반영됐다"고 말했다.


폭력·구금·공개처형 등 인권침해 사실이 명확한 유형과 달리 먹고 사는 문제 등을 다루는 '사회권'은 인권조사에서 가장 까다로운 사안으로 꼽힌다. 가해 주체와 책임 소재, 피해 정도를 지표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루에 밥을 한 끼만 먹었다'라는 명제를 놓고 누구에 의한 피해인지, 또 그게 어느 정도의 피해인지 객관적 측정이 쉽지 않다는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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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 유린의 실상이 국제사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며 "(보고서 공개 발간을 계기로) 이제라도 북한인권법이 실질적으로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차원에서 북한인권보고서가 매년 발간돼야 한다면서 '연례'라는 표현을 보고서에 넣으라고 통일부에 지시했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통일부는 이번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가칭 단계에서 써오던 '연례'라는 표현도 뺐다. 보고서 공개를 임기 내내 뭉갠 지난 정부 때처럼 또다시 공개주기가 불명확해진 것이다. 센터 관계자는 "조사 인원이 극단적으로 적으면 내년도 보고서에서 변하는 게 없어 고민하고 있다"며 "발간할 필요를 느끼면 내년에도 발표하겠지만, (정해진 발간) 주기는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인권조사 분야 전문가는 "정부 이름을 달고 낸 보고서라 하기엔 수준이 너무 낮다"며 "민간단체에서 낸 보고서도 수백쪽 내내 증언만 나열하진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어 "DB를 정상 구축했다면 최소한 인권침해 유형별로 경험·목격 비율이라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최근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더더욱 과거와 비교해 어떤 인권침해가 늘거나 줄고 있는지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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