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확대 선언했지만 계통·수용성·산업 경쟁력은 여전히 과제

[기자수첩] 재생에너지 '100GW 청사진'보다 더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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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동 전쟁발 에너지 안보 위기를 돌파하겠다며 재생에너지를 '주력 전원'으로 공식 선언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발표한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를 확보하고, 2035년에는 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도권과 충청·강원권에 GW급 초대형 태양광 단지를 조성하고, 재생에너지를 '제2의 반도체·조선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방향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중동 위기와 RE100,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AI 시대 전력 수요 급증까지 겹친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현실적인 과제가 됐다. "얼마나 싸게 수입하느냐"보다 "얼마나 덜 수입하느냐"가 중요한 시대라는 정부의 문제의식도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실행'이다. 화려한 청사진 이면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이 적지 않다. 목표는 역대급으로 높아졌는데, 정작 이를 현실로 만들 디테일과 실행 방안은 곳곳에 비어 있다.


재생에너지는 발전소를 짓는 것보다 생산된 전기를 수요처로 보내는 송배전망 확보가 더 중요하다. 현재 수도권과 호남 일부 지역은 이미 계통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부도 이번 계획에서 "계통 부족이 재생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인정했다. 그런데도 송전망을 얼마나, 어떤 속도로, 누가 돈을 내서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의외로 빈약하다. 수십조 원이 들어갈 문제인데 가장 어려운 질문은 뒤로 미뤄둔 셈이다.

비용 문제도 비슷하다. 정부는 태양광·풍력 발전단가를 대폭 낮추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글로벌 대비 태양광은 2.2배, 육상풍력은 3.2배 수준이다. 인허가 비용과 주민 수용성 비용, 공급인증서(REC) 가격 왜곡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장기 고정가격 계약 확대'만으로 단기간에 상황이 바뀔지는 미지수다. 업계에서 정부가 발전단가 목표를 미리 숫자로 못 박은 데 대해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산업 전략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제2의 반도체·조선 산업으로 키우겠다고 했지만, 현실의 국내 시장은 정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중국산 저가 공세 속에 국내 기업들은 점점 밀려나고 있다. 정부 계획안에 따르면 태양광 모듈 국산 제품 사용 비율은 2018년 72.5%에서 지난해 41.6%까지 급락했다. 보급은 늘어나는데 정작 시장과 수익은 해외 기업이 가져가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오랫동안 '계획의 역사'였다. 늘 거대한 숫자와 장밋빛 목표는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주민 반발과 송전망 지연, 비용 부담, 정권 교체 같은 변수 앞에서 번번이 흔들렸다. 실제로 직전 재생에너지 계획도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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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 계획에서 진짜 중요한 건 '100GW'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다. 누가 돈을 내고, 누가 책임지고, 주민을 어떻게 설득하며, 송전망을 얼마나 빨리 확충할 수 있느냐다. 이번에도 숫자만 남고 실행은 뒤처진다면 '역대 최대 청사진'이라는 수식어는 몇 년 뒤 또 다른 실패의 기록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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