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이렇게 된 마당에 사실대로 다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2013년 10월 21일 늦은 저녁.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의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당시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 한 말이다. 오전부터 진행된 국감에 다들 피로감을 느낄 무렵 터져 나온 윤 지청장의 폭탄 발언은 나를 비롯해 현장에 있던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국가정보원의 댓글 조작 사건 수사팀장을 맡고 있던 그는 사사건건 수사에 딴지를 거는 상관에게 사전 보고를 생략한 채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고 압수수색을 실시해 수사 절차를 어겼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였다.
그날 그는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외압이 있었음을 폭로했다.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면전에서 “검사장님 모시고 이 사건을 계속 끌고 나가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습니다”라고 했고, 직속상관이었던 이진한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가 수사 총괄책임자가 맞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였을까,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조 지검장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어느 조직보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검찰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항명 사태. 지금은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된 윤 당선인이 처음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날이었다.
부당한 수사 외압을 폭로한 대가는 혹독했다. 검찰 내 수사를 잘 하는 엘리트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만이 맡을 수 있다는 대검 중수1·2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쳤던 그는 이듬해 한직인 대구고검 검사로, 2년 뒤 다시 대전고검 검사로 좌천되며 더 이상 재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랬던 그가 다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이 출범하면서였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로 정권에 흠을 낸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특검 파견을 고사하던 그는 결국 박영수 특검의 요청을 수락했다. 박 특검은 그를 20명의 파견검사와 검찰·경찰·국세청 파견공무원 40명을 지휘하는 수사팀장에 임명했다.
편안한 점퍼 차림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마련된 특검 사무실에 등장한 그는 다시 본업인 수사를 할 수 있게 돼서인지 왠지 활기차보였다.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등 거물급 정치인들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하는 성과를 내고 정권이 바뀐 뒤 그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자신보다 높은 선배들을 1·3차장검사로 지휘하게 된 기수 파괴, 파격 인사였다. 이후 단행된 검찰 인사에서 그의 측근 검사들이 주요 보직에 중용되며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보다도 실세라는 소리가 나왔고, 검찰 내부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그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고 결국 그는 검찰의 수장에 올랐다. 그런 그를 다시 시험에 들게 한 건 조국 법무부 장관이었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그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아끼는, 그것도 곧 본인의 직속상관이 될 장관 후보자를 수사하기로 마음먹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직진했다. 조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된 날 저녁 그는 표창장 위조 혐의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한 정 교수를 기소했다.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 역린의 대가는 앞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때보다 몇 배는 더 가혹했다. 그는 순식간에 여당의 ‘공공의 적’이 돼버렸고, 총장을 보좌해야 할 대검 간부들마저 죄다 친정부 성향 검사들로 교체되며 손발이 묶였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를 통해 두 번이나 그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했고, 그의 직무집행을 정지시킨 뒤 6가지 혐의를 적용해 징계까지 청구했다.
하지만 결국 경질된 건 추 전 장관이었고, 윤 당선인이 수사해 기소했던 조 전 장관 일가 사건들은 예외 없이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되고 있다.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검사 윤석열이 아닌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이런저런 우려가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가 일신상의 안위보다는 늘 정의를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왔고, 비록 살아있는 권력이라도 정의에 어긋나면 맞서 싸웠다는 점이다. 국민이 정치 초보인 그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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