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싸구려의 함정
저가의 잡동사니·아이디어 상품들 쏟아지며 현대인 유혹
가성비라는 비율이 가진 인식의 함정
요즘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일이 특별하지 않은 세상입니다. 게다가 해외에 있는 물건도 관세청 사이트에서 간단한 본인 인증을 하면 ‘고유통관번호’를 부여받아 쉽게 구매할 수 있죠. 몇 해 전 저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본 중국의 거대 그룹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을 접하게 됐고, 한동안은 거기서 마치 중독처럼 쇼핑했습니다. 그전에는 번역서가 없는 외국 원서나 실험에 필요한 부품을 구매하기 위해 미국의 아마존이나 이베이를 이용하곤 했지만, 배송 지역이 제한되거나 배송료가 부담스러웠던게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어디든 배송이 되는 중국 쇼핑몰은 신세계였죠.
물론 배송료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싸고 특히 급하게 받지 않아도 될 물건이면 배송료는 무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말고도 많은 사람이 이렇게 구매를 한 모양입니다. ‘잊을 만 하면 도착한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몇천 원짜리 물건도 국내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더군요. 그 쇼핑몰에는 없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상품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중국 광군제인 하루에만 알리바바 계열의 유통플랫폼을 통한 판매액이 한화로 약 99조 원이라고 하니 소비 규모는 물론, 거래되는 상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싸구려 상품 생명은 짧고 우리는 그보다 더 짧은 행복감 누려
물론 모든 상품이 양질의 상품은 아닙니다. 시쳇말로 ‘대륙의 실수’, ‘머스트해브’로 수식된 물건을 ‘보물찾기’ 하듯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이미 소비자의 심리를 꿰고 있는 노련한 기업은 플랫폼을 보물찾기 놀이터로 둔갑시킨 것이죠. 이들은 소비자가 무엇을 사려는지 알고 사는 방식을 넘어 존재조차 몰랐던 물건들을 필수품처럼 여기게 했던 겁니다. 부지불식간에 저가의 잡동사니와 아이디어 상품이 저와 같은 고객을 유혹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특히 과학을 업으로 하는 저의 경우에는 유독 과학적 원리로 작동되는 물건들에 포획될 수 밖에 없더군요. 마술처럼 작동하는 소개 영상을 보면서 필요한 물건이라고 여깁니다. 날계란을 이쁘게 깨거나 노른자를 섞는 도구, 과일껍질을 자동으로 얇게 깍는 기구, LED를 이용한 차량용 연락처 표시 장치나 동작 감지가 되는 취침 조명, 각종 충전용 어댑터를 일체형으로 만들어 어떤 전자장치든 연결하는 부품, 욕실을 마치 고급호텔의 풍경처럼 만들어 주는 세제나 용품 등등 온갖 저렴하고 조잡한 싸구려 물건이 집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런 물건에는 나름의 과학적 원리가 있습니다. 물리?화학적 근거나 공학적 역학이 물건을 설명하고 있었으니까요. 언뜻 보기에는 혁신적이고 창조적 상품입니다. 사람들은 물건을 소유하며 소위 얼리어답터라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제품은 홍보 영상처럼 작동하지 않거나, 홍보 문구의 ‘영원’,‘견고’,‘편의’처럼 상품의 최고 가치를 표현한 언어와 격리되기 일쑤였습니다. 한편 노동 절약형이라는 과학적 기능은 지나치게 복잡한 경우가 많아 더 많은 노동을 만들어 냅니다. 특히 부품들끼리 맞물리는 복잡한 기구는 조립 과정은 물론, 사후 세척 관리도 무척 번거로웠습니다. 인체공학을 고려하지 않거나 부실한 마감으로 다치기도 했죠. 그러니까 수고스럽지만 계란은 그냥 두드려 깨면 될 일이었고, 과일껍질은 과도를 쓰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저 과학이라는 용어에 포획되어 사물이 존재해야 하는 본래의 철학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이런 물건을 광고하는 역할까지 했더군요. 흔히 각종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핫한 아이템’을 자랑하기 마련이니까요. 뒤늦게 제가 만든 싸구려 집안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고 플랫폼의 전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1달러가 채 되지 않는 물건이 화석연료를 태우며 바다를 건너면서도 저렴한 배송료로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부터 의심이 들었습니다. 이유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국가는 만국우편연합 Universal Postal Union에 가입되었기 때문이더군요. 이 연합에 속한 국가 간에는 EMS를 비롯해 각종 우편 서비스를 양질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고정 가격에 가까운 형태로 우편을 이용한다는 것이고 상호 호혜 원칙에 따라 우편 수단과 국가에 상관없이 우편물은 국내 우편처럼 성실하게 배송해야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용했던 업체가 속한 국가의 우체국들은 협약을 소위 악용했던 것이죠. 발송 우체국은 목적지 우체국까지 물품을 운송하는 비용만 부담하면 되고, 실제 목적지까지 배송에 필요한 비용은 우리나라 우체국에서 대부분 부담했던 겁니다. 결국 저렴한 배송료에 발송 물량을 무차별적으로 늘리면 그들은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그야말로 총체적 과잉이 낳은 불공정이 있었습니다. 뻔한 물류비용에서 누군가 이익을 봤다면 분명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제로섬(zero sum) 게임이니까요.
20세기에 들어서며 크랩을 만드는 데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물질은 플라스틱이고, 제조 공정에서 화학물질을 우리가 사는 곳으로 쏟고 있습니다. 사진 = gettyimage
원본보기 아이콘공공·민간 굿즈 상품들, 친환경 이름 붙은 백색 소음
역사학자인 웬디 A. 월러슨 Wendy A. Woloson은 자신의 저서 <싸구려의 힘>에서 지금을 보편적인 저렴함의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물건들을 크랩(crap)이라고 말하며 소위 크랩에 포위당한 현대인의 태도를 꼬집습니다. 결국 총체적 과잉의 시대에서 새로운 종류의 크랩을 만들어 내려면 창의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고, 마치 그것을 증명하듯 과학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요즘 시대에는 ‘과학적인 것’이라 하면 누구도 반론을 들지 않으니까요. 저자는 특히 균일가 매장을 지목합니다. 고정가격 매장은 상품을 품질 가치에서 가격으로 초점을 전환하며 더 많은 크랩을 양산하고 공급합니다. 그러니까 과거 미국에서 시작된 잡화점 문화는 근대 문명의 일부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 명맥은 여러 형태로 진화해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크랩 문화는 물질만능주의라는 영원불멸으로 있는 한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할 겁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좋은 물건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양질의 삶 goods life’을 제공해 주겠지요. 일종의 물질 사용에서의 민주화는 이룬 셈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싸구려 물건은 결국 무용지물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성비’라는 비율이 가진 인식의 함정입니다. 가격과 성능의 크기만 따지니 상품의 질과 가치는 사용자의 수요에 맞추어지는 게 아니라 가격에 따라 정해진 것이죠. 싸구려 상품의 생명은 짧고, 우리는 그보다 더 짧은 행복감을 누립니다. 무용으로 빠진 가치는 미니멀리즘으로 포장되어 자랑스럽게 우리 곁에서 떠납니다. 저렴하니 폐기에도 어떠한 고민도 저항도 들지 않지요. 당연히 이런 물건을 유산으로 대대손손 남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값이 싸야 하므로 대량생산되어야만 하는 상품들은 분명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20세기 이전의 이런 상품들은 적어도 수리가 가능하거나 용도를 변경할 수 있는 금속이나 목재, 석재, 혹은 고무 등으로 제작됐습니다. 미국의 게라지(garage) 문화도 여기에서 출발했죠. 적어도 물건을 재활용하고 수리하고 다시 쓰는 문화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며 이런 크랩을 만드는 데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물질은 플라스틱이고, 제조 공정에서 화학물질을 우리가 사는 곳으로 쏟아 버렸습니다. 저가의 플라스틱 상품들은 더 쉽게 고장이 나고 우리 눈앞에서 치워 사라지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태평양을 떠다니는 쓰레기 더미는 무려 1조8,000억 개의 플라스틱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게는 약 8만8,000t에 달합니다. 우리 눈앞에서 치워진 쓰레기는 생명과 자연의 순환에 이바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태계는 물론 지구 환경마저 엉망으로 만들고 있지요. 크랩은 자연만의 타락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타락까지도 포함하지요. 제조공장이 중국 외곽 지대나 개발도상국에 자리를 잡은 것은 값싸게 물건을 만들기 위한 노동력 착취 때문입니다. 노동 조건을 규정하는 국제 조약을 회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과도한 엉터리들이 주는 왜곡된 쾌락은 우리의 미래 환경과 누군가의 희생을 갈아 넣은 산물인 셈입니다.
최근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을 방문하며 기념품이라는 공짜 물건을 받게 됩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도서를 구매하면서도 공짜처럼 여기게 하는 굿즈도 풍부해졌죠. 몇천 원에 불과한 최저 균일가 매장은 싸구려 문명을 잇는 다른 모습의 오프라인 유통 채널입니다. 에코백과 텀블러, 머그잔은 그야말로 친환경이란 이름이 붙은 백색 소음이 된 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질문할 필요가 있는 지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일시적 쾌락 말고는 쓸데없는 대부분 크랩을 우리는 어떤 이유로 열광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과연 사물에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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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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