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 9년…여전히 직장 내 가부장적 관행 남아
전문가 "가부장적이고 성 차별적인 관행 개선되어야"

영정사진.사진=연합뉴스

영정사진.사진=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슬기 인턴기자] #직장인 A(27) 씨는 최근 외조모상(喪)을 당해 회사 측에 휴가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A 씨는 "장례식장은 부산이고 집은 서울이라 휴가를 2일 쓰겠다고 했더니 '친할머니였으면 휴가를 2일 줄 수 있지만, 외할머니라서 불가하다'라며 거절당했다."라며 "결국 하루는 휴가를 받고 하루는 연차를 써서 상을 치렀다. 더 화가 났던 건 회사 측에서 '편의를 봐줬으니 임원진에 감사 인사를 전달하라.'라고 했던 것이다. 아직도 내가 이런 차별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부계 혈통 중심의 호주제가 폐지된 지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부 기업에서는 여전히 외조부모와 친조부모 경조사에 휴가 일수나 경조비 지급에 차등을 두고 있어, 직장 내 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는 가부장적이고 성 차별적인 관행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며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과거 기업은 '상주 역할의 유무'를 이유로 경조 휴가 및 경조비 지급에 차등을 뒀다. 친조부모의 경우 직원이 상주 역할을 할 수도 있으나 외조부모의 경우 상주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일부 기업의 경우 여전히 해당 규정을 관행이라는 이유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기업은 친조부모 경조사에 휴가 일수를 5일 지급했지만, 외조부모 휴가에는 2일만 지급했다. 또 다른 기업은 친조부모에는 10~30만 원의 경조금을 지급했지만, 외조부모에는 지급하지 않았다.


직장인들은 차별적 규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대 여성 직장인 B 씨는 "회사 동료가 외가 쪽 경조사에 참여하기 위해 휴가 신청을 냈다가 상사로부터 핀잔을 듣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가부장적인 문화나 관습이 남아 있다는 점이 씁쓸했다."라며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관행을 없애기 위해 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30대 후반 직장인 C 씨는 "회사가 업무가 아닌 가정에서의 문제에 관여하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항의하면 눈치를 받을 것 같으니 그냥 참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런 기업 문화가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그게 가장 큰 문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기업에서 외가 쪽 조문 휴가에 차별을 두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표한 '기업의 경조 휴가 및 경조비 지급 현황'에 따르면 경조 휴가 일수에 차이를 둔 기업 36개 가운데 18개 기업은 외조부모상에 경조 휴가를 주지 않고, 나머지 18개는 친조부모보다 1~5일 정도 휴가 일수를 적게 줬다. 또 경조비 지급액에 차이를 둔 30개 기업은 모두 외조부모상에 경조비를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이 밖에도 경조 휴가 일수와 경조비 지급액에 모두 차이를 둔 기업 25개 가운데 15개 기업은 친조부모상에는 휴가와 경조비를 지급하면서 외조부모상에 대해서는 기준 자체를 두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지난 2013년 "호주제 폐지에 따라 친조부모와 외조부모가 같은 지위의 가족으로 인정되고 있음에도 외조부모를 차등 대우하는 것은 차별의 소지가 있다"라는 의견을 내고 "헌법 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남녀의 성을 근거로 차별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한다."라고 지적했다.


양성평등./사진=연합뉴스

양성평등./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친가 외가 여부를 두고 휴가 등 차별이 심화하다 보니 아예 이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고 "근로자의 경조사 휴가 신청을 받고도 이를 허용하지 않거나, 친가와 외가의 경조사 휴가를 다르게 한 사업주에게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라고 했다.


박 의원은 "인권위의 의견표명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기업이 여전히 친가와 외가를 차별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며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은 "근로기준법 제6조에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성별과 상관없이 균등하게 처우를 해야 하는데 경조 휴가 및 경조비 차등 지급은 균등 처우에 어긋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AD

이어 "이런 차별적 관행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사례 등을 모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또, 시행령과 같이 제도적으로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경조사 휴가가 법정 휴가가 아닌 사업주의 재량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어도 이러한 사업주의 재량이 헌법 정신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헌법 등에 위배가 되고 있다면 개선이 되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