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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처음이라] 남다른 '범털'의 신(新) 재판전략

최종수정 2019.04.28 21:23 기사입력 2019.04.2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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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처음이라'는 법알못(알지 못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소소한 법 궁금증을 풀어보는 코너입니다. 법조기자들도 궁금한 법조계 뒷이야기부터 매일 쓰는 사건 속 법리와 법 용어까지 친절하게 설명해드립니다.


범털은 돈이 많거나 지적수준이 높은 죄수나 수형자들을 일컫는 오래된 은어입니다. 반대로 가난하고 지적수준이 낮은 수형자들은 이른바 ‘개털’이라고 부르죠. ‘범털’들은 재판전략이 남다릅니다. 돈이 많은 범털은 무죄를 받아내기 위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재판에 대응합니다.


또한 평소에는 보기 어려웠던 법률용어와 법적절차를 쓰는 범털들도 있습니다.이들의 신(新)전략은 또 다른 범털들의 ‘가이드라인’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법원 안팎을 달구는 범털들의 신 전략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신(新)전략은 범털 중 범털로부터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현재 범털 중 범털로 꼽히는 인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입니다. 직위로도 금방 알 수 있듯이 그는 사법부의 최정점을 찍었던 법률전문가입니다. 또 한사람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입니다. 그는 고위 법관 출신으로 행정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재판에도 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이들이 재판 초기 구사하고 있는 재판 전략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공소장 일본주의’입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찰이 어떤 피의자를 기소할 때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형사소송 이론입니다. 재판부에 예단을 줄 수 있는 사전 정보는 공소장에 기재할 수 없다는 건데요. 검찰이 양 전 원장의 혐의들에 대한 배경사실 등을 공소장에 담았다며 위법한 공소장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겁니다.

양 원장이 쏘아올린 이 전략은 ‘범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5·18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씨, 430억원대 횡령·뇌물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 가습기 살균제 인체 유해성이 담긴 자료를 은폐한 혐의를 받는 SK케미칼 현직 임원 등이 이러한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전에도 있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재판 초기 이들은 검찰의 기소와 재판 방식 등에 문제를 삼아 헌법소원을 낸 적이 있었는데요. 이 무렵 범털들의 헌법소원이 눈에 띄게 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보석(보증금 등을 내건 석방) 논란이 있던 후에는 이 전 대통령,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의 공범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 양 전 대법원장이 비슷한 시기 보석을 청구했습니다.


개털은 물론 범털들도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전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범털이라도 감히 꿈꿀 수 없는 전략이 종종 나옵니다. 임 전 차장 측은 ‘재판 자료가 많아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와 ‘직접 변호’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기소된 임 전 차장 측은 지난달 11일부터 주 2~3회에 걸친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달 24일 재판에서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은)‘너의 하소연은 근거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따졌고, 재판장은 “말을 왜 그렇게 하느냐”며 받아 쳤습니다. 이렇게 재판부와 설전을 벌이던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휴정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직접 변호도 눈여겨 볼 점입니다. 특히 지난 15일 ‘강제 징용 피해자 소송’의 선고를 늦추고 이를 대가로 법관의 재외공관 파견을 박 전 대통령 청와대와 거래하는 데 개입한 혐의에 대한 심리가 열렸습니다. 이 때 임 전 차장은 이를 빗대 "비유하면 남녀 간 썸만 타는데 이걸 확대해석해서 불륜관계라고 주장하는 거랑 같지 않나 생각한다"고 직접 변론을 폈습니다.


이는 직권남용죄의 성립요건인 ‘공무원의 직권을 남용해 부당한 지시를 내렸나’, ‘부당한 지시가 이행되는 상황에 지배적 역할을 했나’를 직관적으로 변론한 법 전문가다운 비유였다는 평가입니다. 반면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 편을 들지 않더라도 문건과 진술들로 증거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며 “강제징용 피해자를 모욕할 의도가 없었다면 할 수 없는 변론이다”거나 “썸도 그 정도 탔으면 불륜이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범인(凡人-평범한 사람)과 범털의 권리는 다른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런 의문을 다시금 품게 하는 재판이 종종 목격됩니다. 징역형을 선고받고도 2심에서 혐의를 다투라며 구속하지 않는다거나, 모호하고 확인하기 어려운 사유로 보석을 인용하는 일 들 말입니다. 진짜로 이런 일이 있었냐고요? 네, 그렇습니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올해 2월 치러진 1심 선고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구속을 면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재판부는 군형법상 정치 관여 혐의로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도 징역 2년6개월 법원 예규에 따르면 '피고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반인 재판이었으면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죠. 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암, 심근경색 등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질환을 겪고 있지 않는 한 일반인은 보석을 허가받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이 검찰, 재판부의 진행에 반발하는 발언을 하면 합의부 판사 3명이 모여 고개를 숙이고 협의를 거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의 재판에서는 보기 드문 낯선 장면입니다. 이에 대해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일반인이었으면 재판 방해라는 재판부의 지적을 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라고 봤습니다. 또 다른 한 중견 법조인는 “피고인이 재판에서 재판부와 검찰의 판단과 발언에 정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도 “이러한 권리 보장은 일반인 재판이 아닌 고위층 재판에서만 보이기 때문에 사법불신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규정한 헌법 제 11조 1항의 조문처럼 모든 국민이 법대 앞에서도 평등한지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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