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계좌 트기 너무 어려운 한국…"자녀 통장·체크카드 만들려면 15만원" 분통[외국인 K-금융 현주소]②
외국인 상담 직원 적은데 한국어 서류뿐
조건·서류폭탄에 신용카드 언감생심
송금·환전 어렵고 수수료 우대·혜택 적어
"은행 갔더니 한국어로 된 가입 서류밖에 없어서 번역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한참 돌려보고서야 무슨 내용인지 알았어요. 은행원도 한국어나 영어만 할 수 있어서 제대로 된 설명을 못 들어 답답했습니다."(네팔인 유학생, 24세)
"외국인등록증이 있어도 계좌나 신용카드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요. 휴대전화 요금,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 공과금 자동이체까지 신청해야 겨우 개설할 수 있습니다."(대만 국적 외국인, 30세)
국내은행의 외국인 고객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들은 은행을 방문했을 때 언어 장벽에 부딪히고 계좌 개설·카드 발급과 송금·환전 등 기본적인 금융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이 희망하는 금융상품은 신용카드(19.9%), 예·적금(18.3%), 해외송금(15.0%)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득·재직 증빙(24%), 요구 서류 복잡(22.7%) 등 신청 단계부터 높은 장벽으로 인해 카드를 발급받거나 계좌를 개설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아시아경제가 만난 한국 거주 외국인들(거주 1개월~18년) 역시 여전히 은행 이용에 불편함을 호소했다.
가장 큰 장벽은 역시 언어…첫 계좌개설부터 진땀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한국에 온 지 1년 된 일본인 미키(29세)씨는 국내 은행들이 외국인 고객을 위한 외국어 서류를 제대로 구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통장을 만들려고 은행에 갔는데 계좌 개설 서류가 전부 한국어였다. 일본어였으면 읽고 빠르게 서명할 수 있었을 텐데, 은행원도 일본어를 못해서 번역 앱으로 일일이 사진을 찍어 보느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며 "그나마도 서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은행원이 짚어주는 곳에 서명을 하고 계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학업을 위해 두 달 전 한국에 온 네팔인 서지나 수누워르(24세)씨도 "계좌 개설을 위해 대학교 내 은행 지점을 찾았는데 한국어 가입 서류를 줘서 직접 번역기를 돌려가며 기입했다"며 "계좌를 만들 때 조항을 하나하나 설명을 듣고 싶었는데 그냥 알아서 다 체크하고 넘기더니 사인을 하라고 해서 불안했다"고 같은 고충을 토로했다.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되어 외국인등록증이 아직 나오지 않은 아오리(25세)씨는 은행 자동화기기(ATM) 사용에 고충을 호소했다. 그는 "한국 ATM 중에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만 지원하는 곳이 많다"며 "모국어 서비스가 제공되는 ATM을 찾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점을 은행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시아경제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과 4개 지방은행(BNK부산·경남·전북·광주·iM)을 대상으로 집계한 본점·영업점·상담센터 인력은 총 219명으로, 외국인 고객 전체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부분의 인력이 영어권 또는 중화권에 치중되어 있어, 금융 애로를 가장 많이 호소하는 동남아권 인력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장에서도 외국인 고객들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있다"며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나 현지인을 외국인 고객 전담 직원으로 채용하려는 추세"라고 말했다.
신용카드 가입 어렵고, 환전 혜택도 제한적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등 소비 생활에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신용카드가 필수적인 경우가 많지만 외국인들은 신청조차 쉽지 않다. 한국 유학 10년 차인 중국인 허흠(30세)씨는 신용카드 발급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는 "카드 발급을 신청해봤는데 유학(D-2) 비자로는 승인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학생 신분으로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평균 잔액 기준을 충족하거나 은행 예·적금 담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허가와 아르바이트 소득 증빙이 필요하다.
10년 전 한국 땅을 밟아 한국인과 결혼한 30대 대만인 쉬즈우옌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에서 한국인과 결혼해 결혼비자(F-6)를 가지고 있어도 신용카드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고 요구하는 자료도 너무 많다"며 "외국인등록증, 혼인관계증명서는 물론 휴대전화 요금이나 수도·전기요금 같은 공과금 자동이체 조건까지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어렵게 카드를 만들었어도 일정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한도가 심하게 제한돼 교통카드 정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외국 카드나 글로벌 페이를 사용하는 게 나을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환전 이용률은 높지만 관련 혜택은 제한적이다. 환전 수수료 우대에 있어 내국인처럼 주거래 은행 혜택을 받기 어렵고 달러·유로·위안·엔화 등 주요국 통화가 아닌 경우엔 지점에서 해당 외화를 보유하지 않은 때도 많았다. 쉬씨는 "외국인들이 자국 통화를 들여올 때 한국 은행에서는 우대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니 달러로 현지에서 환전한 뒤 한국으로 송금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비용을 아끼고자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자국민들끼리 음성적으로 불법 환전(환치기)을 하는 역효과도 일어나는 만큼 송금이나 환전 수수료 장벽을 대폭 낮춰줬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자녀 통장 개설하려고 공증비만 15만원…장기 체류 인정되면 금융거래도 개선됐으면
한국 생활에 이골이 난 외국인이라도 자녀가 생기면 장벽은 다시 높아진다. 2008년 유학비자(D-2)로 한국에 들어와 현재 재외동포 비자(F-4)를 취득한 조선족 임호삼(48세)씨는 고등학생 자녀의 계좌와 체크카드 발급을 시도하다가 끝내 포기했다. 미성년 자녀의 통장을 개설하려면 부모(법정대리인)가 증빙 서류를 지참해야 하는데, 외국인은 내국인의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통합 서류가 없어 별도의 공증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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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는 "내가 친부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외교부의 아포스티유(Apostille) 공증을 받아오라고 하더라"라며 "공증 한 번 받는 데 15만~20만원 정도 비용이 들고 브로커를 거쳐도 열흘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이어 "수년 이상 장기 체류를 하며 신분이 확실하게 검증된 외국인에 대해서는 금융거래 절차를 전향적으로 개선해줄 필요가 있다"고 토로했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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