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건설부동산부장]

[아시아블로그]평민의 결혼, 왕족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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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본 이벤트는 외삼촌의 결혼식이다. 엄마는 잔치 준비하느라 며칠째 외가댁에서 지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나도 따라 갔다. 잔칫날 친척들이 모이고, 이웃들도 북적였다.


마침내 족두리를 쓴 신부가 가마에서 내렸을 땐 왕비 같았다. 그리고 신부 앞에 사모관대한 신랑이 서자 한 쌍의 원앙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어른들에 의해 초례청으로 이끌려 혼례를 치렀다.

식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무진장 웃고 떠들었다. 절도 하고, 신랑 신부는 술잔을 주고 받기도 했다. 주례자는 길게 늘어뜨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재∼에에∼∼ 례∼에에 ∼∼', '마…∼아아 아ㅈ 저어어ㄹ' 하는게 재미 있었다. "신부가 웃으면 딸 난다"고 소리치는 어른도 있었고 다른 이들도 연신 웃고, 농담을 던졌다.


혼례가 끝나자 어른들은 춤추고, 노래 불렀다. 술과 음식이 마당으로 방으로 날라졌다. 밤이 되면서 처마에 청사초롱이 매달리고 대낮같이 불이 켜졌다. 잔치 마당과 온 집안이 환했다. 내게 그 어떤 조명도 외삼촌 결혼식날처럼 화려해 보이진 않을 정도다. 마당 곳곳에는 화톳불이 지펴졌다. 한밤중에도 마당의 천막에는 어른들이 가득했다. 신랑이 술이 얼큰해지자 어른들은 발바닥을 때리며 짓궂은 장난을 벌였다.

나는 잔치가 끝난 다음날에야 엄마 손을 잡고 돌아왔다. 엄마 한손에는 할머니한테 드릴 음식이 들려 있었다. 고갯마루를 지날 때 엄마가 말했다.


"시집오던 날 이 고갯마루에 고모님과 순냄이(할머니 조카딸)가 마중 나왔드라. 둘을 따라 아버지와 함께 새텃말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전날밤 초행 와서 처음 봤다. 외할아버지한테 절을 올리고 나서 나를 돌아보는데 눈이 마주쳤다. 키 크고 잘 생겼드라. 우리 동네 청년들하고는 영판 달라서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신부가 웃으면 안 된다길래 참았다."


엄마는 그렇게 내게 주절주절 결혼날 추억을 들려줬다. 엄마 얘기는 어린 내게 무엇인지 알 수 없게 애틋했다. 그래서 가끔씩 엄마를 올려다봤다. 그렇다고 꼭 내게 하는 말같지도 않았다.


"니 아버지는 나귀도 안 탔고, 나도 가마도 없이 걸었다. 보통이는 고모가 받아줬다. 그리고 오자마자 집앞에서 아버지랑 사진을 찍었다. 그게 처음 찍어본 거다. 가마도 안 타고 시집가는게 좀 안 좋았다. 외할아버지가 가난하지도 않은 편이었는데 니 아버지가 그냥 걸어서 초행온 걸 보고 나도 걸어가라고 한 것 같드라."


그 초행이 있던 날 이후 엄마는 가난한 이씨네 며느리가 됐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떠꺼머리 이씨 총각이 가장이 되듯 하나의 세상이 열린다. 그리고 같은 길을 간다. 추노의 대길이가 언년이를 만나 반상의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처럼. 하나의 세상을 보고, 그 세상을 향해 함께 간다.


평민중의 평민인 나는 평민중의 평민인 여자를 만나 평민으로 결혼했다. 예식장에서 20분만에 절차에 따라 간단히 치렀다. 축가와 축시가 곁들여지기는 했지만 내 친구들이 하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결혼식 끝났을 때 기분은 허전했다. 외삼촌처럼 발바닥을 맞지도 않았고, 엄마처럼 잘 생긴 배우자를 보면서 웃음을 참지도 않았다.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공장 물건 찍듯이 공정대로 잘 찍었을 뿐이다. 나와 내 친구들도 그랬다. 예식장 직원들은 다음 공정을 치루기 위해 메뉴얼대로 서둘러 우리의 결혼제품을 밀어냈다. 그렇게 스탬프가 팍 찍히는 것으로 우리 결혼이 생산됐다. 이땅에 환웅이 웅녀를 만나 결혼해 단군세상을 이루고, 하늘의 아들 해모수가 강가에서 하백의 딸 유화를 덮친 이래 가장 흔한 생산품이었다.


우리의 결혼식이 그렇지 않은가. 당시나 지금이나 결혼은 예식장산업 육성방안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주변 식당과 사진관도 육성시킨다. 꽃가게와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의류산업에 약간의 보탬이 되는 것으로 우리는 일생의 '큰일'이 간소히 정리된다. 그리고 결혼은 두 사람이 이루려는 세상과 연관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주례 입장-주례 소개 다음으로 '신랑 입장'과 함께 버튼이 눌러지면 컨베이어벨트는 멈출 새 없이 돌아간다. 신부 입장-신랑, 신부 맞절 - 혼인 서약-성혼선언문 낭독-주례사-신랑, 신부 퇴장-기념 촬영 끝 하면 스템프가 꾹 찍힌다. 예식장 직원들은 그대로 사람들을 내몰고 다음 상품을 받는다.


그렇게 지금도 이 땅의 젊은 청춘들은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15분동안 간단히 결혼제품을 치루내고 있다. 결혼 생산 메뉴얼인 '가정의례준칙'을 만든 대통령은 죽었다. 대통령이 되려는 그의 딸은 아직 공장을 통과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만든 가정의례준칙이 갖는 함의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려는 세상이 무엇인지 아는지는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세상을 만드는 날 스탬프로 찍혀 다시 반세기를 더 살아간다는 이 엄혹한 진실은 또 어떻고? 하여간 죽은 대통령이 공장주였던 혼례식장에서 공장주의 딸이 살아있는 세상으로 날마다 결혼이 뱉어지고 있다.


지금 영국에서 '세기의 결혼'이 열리고 있다.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29)왕자와 케이트 미들턴(29)의 세기의 결혼식이다. 그 결혼을 보러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지구의 20억명의 인구가 지켜본다.


경제전문가들은 경제효과가 약 11억파운드(2조원)로 추산한다. 특히 기념품업계와 외식산업, 주류업계, 여행업계가 직접적인 효과를 본다. 영국 소매업 조사기관 버딕트는 이번 결혼식은 총 6억2000만파운드(약 1조1000억원)의 소비 경기 부양 효과를 거둘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홍보 등 직간접 효과를 고려했을 때 경제적 효과는 11억파운드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여행업계는 60만명의 관광객이 몰린다며 즐거운 비명이다.


나의 결혼도 세상에 약간의 경제활동에 기여했듯이 왕족의 결혼은 더 큰 경제효과를 낳는다. 세상엔 예식장산업을 키운 결혼식도 있고, 2조원짜리 결혼식도 있다. 결혼이 경제고, 문화이면서, 산업이기 때문이다. 결혼이 있는 한 경제는 또 진보하고, 사람들의 생산활동은 또 늘어날 것이다. 그것을 기반으로 우리 아들, 딸들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스탬프로 찍힌 결혼들, 그렇게 절차와 공정대로 만든 결혼은 아주 이익이 박하다. 밥이 덜 생산된다.오늘날 한류라는 아시아주류문화를 만들고, 세계문화를 선도하는 우리에게 결혼문화만큼은 아주 우스운 짝짓기상품으로 전락,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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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예식장을 육성해 부동산업에는 기여한 바가 크다면 할 말은 없다. 우리처럼 이 지구상에서, 지구상의 결혼시장에서 똑같은 결혼제품을 반세기 이상 찍어내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우리 결혼식이 판화처럼 틀에서 성형되는 절차를 가진 것을 '결혼 문화'라고 할 때 그 문화는 밥과 미래에 크게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인위적인 모든 삶의 형태'인 문화로서 우리 결혼은 다양하고, 차별적이고, 미래적여야 한다. 그래서 남녀의 근본이 비로소 성숙되고, 세상의 미래가 빚어지고, 경제의 진보가 이뤄지는 결혼을 위해서라도 저속하기 그지없는 15분짜리 속성 '가정의례준칙'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규성 건설부동산 부장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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