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텐더의 아들에서 미 하원의장으로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나는 평생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해왔다.”
2일 밤(미국 동부시간) 존 베이너(60) 미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가 공화당의 하원 다수당 탈환이 확정된 뒤 환호하는 지지자들 앞에서 내뱉은 일성이다.
공화당의 중간선거 승리로 차기 연방 하원의장에 내정된 베이너 의원은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 출신과 변호사들이 즐비한 워싱턴 정계에서 내세울만한 배경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오하이오주(州) 남쪽의 소도시 레딩에서 12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성장했다. 아버지는 삼촌과 함께 조그만 술집을 경영하는 바텐더였다.
아버지가 술집 수입 가운데 절반으로 12자녀를 키울 정도로 어려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베이너는 술집 마루 닦기, 웨이터, 야간 아르바이트 등 온갖 궂은 일로 학업을 마쳐야 했다.
“어릴 적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려 무척 노력했다”는 베이너의 발언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신시내티 소재 세이비어 대학을 졸업한 베이너는 조그만 플라스틱 제품 판매업체에서 세일즈맨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녔다.
이후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사주는 사망하면서 회사 소유권과 자신의 골프클럽까지 베이너에게 물려줬을 정도로 그에 대한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
사실 베이너의 부모는 가톨릭 교도로 민주당 지지자였다. 그러나 베이너가 민주당에서 공화당 성향으로 바뀐 것은 취직 후 급료 명세서에서 세금이 왕창 빠져 나가는 것을 보고 격분한 뒤였다.
하지만 맨손으로 사회와 맨손으로 부딪치면서 가난한 사람도 세금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가 올해 초 하원에서 소외계층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는 건보개혁법안 통과에 앞서 고성까지 질러대며 부당성을 주장한 것은 그 때문이다.
1985년 기업인에서 오하이오주 하원의원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베이너는 1990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이번 중간선거까지 11차례 재선에 성공했다.
그가 미국 전역에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1990년 초선 하원의원 6명과 함께 하원 의사당 내 우체국과 은행의 비리를 파헤친 뒤의 일이다.
기업인 출신이라서 그런지 투표 기록을 보면 친(親)기업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는 2008년 10월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입안된 부실자산구제계획(TARP)에 찬성표를 던졌다.
베이너는 하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으로 탈바꿈할 경우 건보개혁법과 금융규제법 등 기업에 부담이 되는 조치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두 철폐하겠다고 공언했다. 향후 백악관과 충돌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베이너 대표는 2일 밤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공화당 선거운동 본부에서 승리를 선언하면서 “이번 선거의 승리자는 미국민”이라며 “앞으로 공화당이 하원을 주도해 가며 재정지출 축소로 ‘작은 정부’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골프와 파티를 좋아하고 와인과 줄담배도 즐기는 베이너는 1973년 결혼한 아내 데비와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