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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경제레터]방전과 충전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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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가게마다 ‘휴가 중’ 팻말이 자주 눈에 띄고, 박 대리나 이 과장의 책상캘린더에도 붉은 줄이 주욱 그어져 있습니다. 저 붐비는 계곡과 바다들도 근원을 알고 보면 어딘가에서부터 연결된 한 핏줄입니다. 매년 한 번씩 그렇게 같은 물에 몸을 담그고 동족을 확인하는 민족.

멀리 동해까지 피서를 왔던 미 해군 7함대 핵 항모 조지워싱턴호도 서서히 뱃머리를 돌리고, 북한도 조만간 비상경계령을 풀면 비로소 한반도 전체가 오랜만에 여름휴가시즌입니다. 간밤에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든 정치권도 잠시 휴식이 필요하겠지요.
‘20세 이하(U-20) 여자월드컵’, 이런 국제경기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무관심한 우리 국민들에게 어느 새 4강이 돼 독일과 준결승을 앞둔 당찬 태극낭자들. 그 신선한 돌풍이 오늘 밤 태평양을 건너 기세 좋게 불어옵니다.

여기 지소연이란 19세의 아주 특별한 소녀. 6골 득점에 이번 대회 득점왕을 노린다는 대표팀의 에이스. 그녀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 남자선수들과 섞여서 공을 찰만큼 기량이 뛰어나 한순간에 감독의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어린 야생마를 위해 감독은 빵 한 조각이라도 챙겨주며 배려를 했고, 가난과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를 뚫고 마침내 꽃을 피웠답니다.

시합에 못 나가도록 아버지가 찢어버린 유니폼. 그걸 걸쳐 입고 당당하게 운동장에 나온 소녀와 그 유니폼을 우선 테이프로 붙인 채로 경기에 출장시킨 비정한(?) 감독의 합작. 이혼을 결정한 부모와 병든 어머니를 대신했던 소녀가장임에도 눈물을 삼키며 축구공 하나에 희망을 걸었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축구에 미친 듯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작은 소녀의 정신력과 현란한 몸놀림에 세계 축구계가 아르헨티나의 축구신동인 메시를 닮았다고 붙여준 별명이 ‘여자 메시’.

“내 ‘아이돌’은 없다. 나만의 스타일을 계속 발전시켜 언젠가 자라나는 아이들이 나를 그들의 ‘아이돌’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녀가 희망을 묻는 인터뷰에서 한 참으로 어른 같은 신통한 말입니다. 새벽부터 매미들이 그녀를 응원하라고 온 나라 방방곡곡에다 연통을 넣고 있는 듯합니다.

지난여름/ 얼마나 울었으면/ 속이 다 비었을까/

어느 시인의 눈에 비친 매미의 허물입니다.
매미는 발성기관이 수컷의 배에만 있기에 오직 수컷만이 울 수 있다고 하죠.
일주일 남짓 울어대기 위해 6~7년을 땅 속에서 나무 수액만을 빨고 버티며,
때론 무려 17년을 버틴다는 독종.

그래서 울 수밖에 없겠지요.
눈 뜨자마자 가야 할 날이 며칠 안 남은 것을 알기에.
하지만 사람들은 매미 암컷의 목 메인 비애를 모릅니다.

울지도 못하고 여름과 함께 타들어가는 암컷의 가슴 속.
신혼의 단꿈을 꾸자마자 떠나야만 하는 '일장하몽(一場夏夢)'
과연 수컷은 알고 있을까요? 암컷의 속내를…

매미는 그토록 눈이 크지만 눈(雪)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겨울을 모르니 속 비치는 홑이불 날개로 얼마나 찬바람이 두려울까요.

암컷 몫까지 대신하는 수컷들의 합창.
맴맴맴~~소리 높아가는 숲속에는
멀리서부터 북풍을 타고 온 찬 기운이 선뜻 실려 있었습니다.

은행나무 가지 위에 단정하게 벗어놓은 매미의 허물/
뭐가 그리 급해서/ 속옷을 걸어놓고 갔을까/
얼마나 좋았으면 알몸으로 간 후 여태 돌아오지 않는 걸까/
울고 싶을 때 울지도 못하는 암컷들/

때론 귀에 거슬리는 매미소리에 ‘저 놈의 매미!’라고 쫓지 말고 잠시 연민의 정을 줍시다. 먼저 떠난 초복을 따라 내일 중복도 떠날 채비를 하니, 열대야도 기껏 열흘입니다. 7월을 방전하고 8월을 충전해야겠죠.



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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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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