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공수민 기자] 그리스의 재정위기 사태가 1998년 러시아 디폴트와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을 구하기 위해 전례없는 구제금융을 마련한 것이나 환율 유연성 문제 등이 10여년 전의 러시아 위기 당시와 유사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2일 보도했다.

당시 러시아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다른 기관들로부터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아 국채 수익률 안정에 나섰다. 또한 러시아 정부가 외채에 대해 사실상 디폴트를 선언했을 때 세계은행과 IMF는 대규모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또한 구제금융이 추후 엄청난 규모로 확대된 것도 그리스와 흡사하다. IMF와 다른 기관들은 러시아에 56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으나 러시아 위기로 인해 금융시장이 붕괴될 것이란 미국 정부의 우려가 증폭되면서 구제금융 규모는 225억달러까지 확대됐다. 이는 오늘날의 295억달러와 맞먹는 규모다.

유럽연합(EU)과 IMF는 당초 그리스에 1100억유로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구제금융이 결정되고도 시장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자 EU 재무장관들은 긴급 회의를 소집해 그리스를 비롯한 유로존의 재정불량국을 돕기 위해 총 7500억유로 규모의 구제금융 기금을 조성했다.


러시아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안은 시장에 매우 빠르게 반영됐지만 과소평가됐으며, 이같은 상황은 그리스 사태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러시아 위기 당시 IMF와의 러시아 협상단을 이끌었던 아나톨리 B. 츄바이스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데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르네상스캐피탈투자은행의 로랜드 내쉬 리서치부문 대표는 “그리스가 데자뷰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지난 1998년 러시아를 위해 조성됐던 IMF의 구제금융은 문제를 지연시키기는 했으나 디폴트를 막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구제금융 발표 이후 디폴트에 빠지기까지 한달동안 러시아와 서양 은행들은 만기된 단기채를 현금화하고, 루블화를 달러로 바꾸고, 자금을 러시아 밖으로 빼내는데 열중했다.


이 과정이 벌어지는 동안 구제금융은 환율을 지지해주는 역할을 했고, 빠르게 러시아 시장을 빠져나간 채권 보유자들이 이익을 보게 했다. 반면 러시아는 IMF에 상환해야 하는 자금을 포함해 더 많은 부채를 떠안았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만약 이와 비슷한 행태가 유로존 구제금융 과정에서도 일어난다면 그리스 국채 투자자들이 이익을 얻는 동안 유럽지역 납세자들은 구제금융에 따른 엄청난 채무를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1998년 러시아 위기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대출 기관들은 금리를 낮추고 구제금융 비용을 낮추기 위해 가능한 빨리 최대 지원 규모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 대출기관들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쉬 대표는 “사람들은 그리스와 다른 유럽의 재정위기 국가들의 채권 투자자들이 러시아 때와 같은 행동을 보일 것을 짐작하고 있다”며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이 대규모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하락 베팅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율 유연성 문제도 비슷하다. 러시아의 경우 달러화에 대해 페그제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그리스는 유로존에 묶어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1997년 아시아 지역 경제위기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면서 러시아의 주력 수출 상품인 석유 가격이 폭락했다. 이에 루블화가 평가절하 압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중앙은행은 수개월동안 페그제를 유지했으며, 글로벌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에 몰리면서 달러는 점점 더 강세를 보였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1998년 8월 결국 루블화 평가절하를 용인했다. 그 후 한달만에 루블화는 무려 70% 폭락했고 러시아 경제는 회복되기 시작했다. 회복세는 시장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평가절하 단행 후 1년만에 러시아 경제는 위기 전 수준으로 회복됐으며 그 후 10년간 가파른 회복세를 이어갔다.


문제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지 않는 한 통화 평가절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연봉과 공공복지 제도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고 있지만 이 마저도 시민들의 거센 시위로 인해 그 전망이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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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쉬 대표는 “그리스는 근본적으로는 부채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그리스가 공동통화 사용 국가이기 때문에 환율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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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민 기자 hyun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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