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4시 기상 시장분석*20년 FT칼럼 탐독 큰힘
[아시아경제 김수희 기자]"명장이요. 제가 명장이라고 소개되는 것은 결코 온당치 않습니다. 이 사회에 숨은 명장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pos="L";$title="김영익 하나대투 리서치센터장";$txt="";$size="165,246,0";$no="2008123109434166030_3.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김영익 하나대투증권 부사장 겸 리서치센터장(51, 사진)은 최고의 애널리스트라는 직함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손사레를 쳤다. 증시의 움직임과 수익률에 대한 답으로 모든 능력을 평가받는 증권맨의 삶에서 항상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급변하는 자본시장에서 매일같이 몸부림을 치더라도 미약한 성과만을 거둘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그는 명장이라는 칭호가 붙여지는 것에 고개를 내젓는다.
"사실 요즘도 매일 매일이 괴롭습니다. 김영익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투자금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100% 맞출 수는 없기 때문이죠."
김영익 부사장은 하나대투증권으로 옮기면서 만들어진 '김영익랩'에 대한 부담감을 현재도 가지고 있다며 나름의 고충을 말했다. 그는 "장의 움직임을 가장 가깝게 따라가기 위해 매일같이 시장 지표와 이슈들을 가지고 씨름을 하지만 늘 맞는 답을 내놓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불과 3년 전 최고의 증권시장 예측가에서 거짓말쟁이가 돼야 했던 아픈 기억을 회상했다. 2007년 2분기 주가가 1250까지 큰 폭의 조정을 보인 후 하반기에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당시 주식시장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이듬해 2000포인트를 넘어섰던 것.
김 부사장은 "그 때는 1250이 자꾸 거론되서 투자자들을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고 회고했다.
이후에도 그는 주가 전망을 바꾸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파문으로 촉발된 미국 부동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2008년 10월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까지 그는 2년 가까이 가슴앓이를 해야했다.
"최악의 경우 1250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했고 2009년에는 3000까지도 가능 낙관적으로 장을 보고 있었는데 '비관론'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현실이 안타깝더군요."
계속되는 시련에 시장을 떠났을 법도 하지만 그는 애널리스트로서의 소명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때 '상반기 급등론'을 들고 나온 그는 회의에 가득찬 언론과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올 상반기 주식시장의 수직상승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모두들 믿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올 3분기까지 급등이 가능한 것으로 모델이 나왔고 저는 저를 믿는 투자자들을 위해 낙관론자로 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지난해 말 900까지 폭락했던 주식시장은 올 들어 1700선을 돌파하며 그의 전망에 따라 정확히 움직였고 그를 믿고 따라온 투자자들도 큰 수익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낙관으로 가득찬 4분기. 그는 외로운 싸움을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주식시장이 좋을 것이라는 말이 넘치고 있는데 제 전망으로는 내년 증시가 좋을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그는 사실 오답보다는 정답을 많이 내놓았던 애널리스트였다. 지난 2000년 주가 급락, 9.11 테러 직전의 주가 폭락과 그 후의 반등, 2004년 5월의 주가하락과 2005년 주가 상승 등 꿈처럼 지나간 시절이지만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증시전망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김 부사장은 '노력'이라는 두 글자를 답으로 냈다.
"새벽 4시면 눈을 떠 시장 상황을 익히고 6시에서 7시 미국 증시와 거시지표를 분석해 매일 아침 펀드매니저들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10여년 이상 쌓이니 시장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파이낸셜타임즈의 칼럼란도 그가 유력한 증시전망을 제시해줄 수 있게 해준 힘이다. "파이낸셜타임즈 칼럼란은 지금도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읽어요. 입사 때 한 상사가 3년만 파이낸셜타임즈를 읽으면 증권가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조언해주더군요. 그 때부터 읽은 것이 벌써 20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 덕에 '공부벌레 증권맨''농부형 인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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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사장은 '헬렌켈러의 시'를 가장 좋아하는 글로 꼽았다. 그는 "그 글 중에 '네가 내일 장님이 될 것처럼 오늘을 봐라'라는 말이 있다"며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못 이룰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증권맨 20년, 베스트 애널리스트라는 칭호를 달았지만 그가 다시 오늘을 열심히 사는 이유는 투자자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편지를 통해 이메일을 통해 격려해주는 투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오늘도 시장 분석에 제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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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 기자 suhee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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